식품안전 미비점, 대-中企 상생으로 극복을-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54)
식품안전 미비점, 대-中企 상생으로 극복을-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54)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1.05.0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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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식품 안전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이 대안

우리나라에는 중소·영세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생계형 적합업종법’이라는 것이 있다. 식품산업을 보면 국내 장류 시장의 80%, 두부 시장의 76%를 대기업이 점유하고 있어 소상공인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 업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국수와 냉면 제조업도 작년 말 추가 지정됐다. 2013년 시작된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중기적합업종’지정(상생법)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2013년 지정 이후 지난 8년을 돌이켜 보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한 게 아니라 ‘동반 하락’ 했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중기 적합업종에서 해제된 김치의 경우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로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제품을 다양화해 해외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이 됐고, 우려와 달리 김치업계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실 누구나 생계형으로 창업했다 하더라도 김밥, 떡볶이, 사탕, 과자, 음료, 햄버거, 두부, 장류로도 전 세계를 주름 잡을 수 있고 네슬레, 맥도날드, 코카콜라 같은 글로벌 대기업도 될 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술, 떡, 엿 등 조잡하고 단순한 수공업의 시대였다. 근대적인 공업화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전후였고 해방 이후 1948년 12월 체결된 ‘한미경제원조 협정’과 625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미국의 원조로 얻은 옥수수, 밀 등 곡물 도정, 수산물 통조림, 제분, 제당, 양조 등 전쟁 군수품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순조로운 진행과 월남 파병, 중동 건설 등으로 인해 식품산업이 전반적으로 약진했다. 특히 쌀 부족에 따른 정부의 밀가루 ‘분식 장려시책’으로 제과, 제빵, 제면 산업이 급성장했고 장류산업도 발전했다. 1970년대 후반 개방농정으로 해외 원료농산물의 수입이 보다 용이해졌고 고급화, 다양화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치즈, 마가린, 소시지, 햄, 통조림 등 육가공품이 본격적으로 생산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은 관광산업과 함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뜨거운 물에 데워 즉석에서 먹는 레토르트식품의 출시였다.

지금 2021년 국내 식품산업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한때 미제, 일제 등 외국산을 사 먹던 나라가 이제는 수출도 하고, 소비자는 수입품 보다 국내산을 더 선호한다. 우리 식품·외식 시장규모는 벌써 200조를 훌쩍 넘어섰고 1조 매출 사도 20개 이상이 나왔다. 수출도 많이 하는데, 해외 매출 1조 달성 기업도 CJ제일제당, 오리온, 농심 등을 필두로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규모의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 일반적인 정부의 산업정책이나 안전규제를 펴기가 어려운 구조다. 화려한 수출 대기업의 그늘 아래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20인 미만 영세기업이 90%를 차지하고 있고, 매출액 20억 원 미만 기업도 91.5%나 된다. 이들 영세기업은 전문 인력도 없어 안전 관리 제도나 기준규격, 검사 항목 등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시장의 상황과는 달리 우리 정부의 식품안전 관리 수준은 전 세계 최고다. 우리 식품산업의 역사는 사실상 6.25한국 전쟁 이후부터 시작돼 약 70년 정도로 봐야 하는데, 천 년 이상의 식품 제조, 수출 역사를 가진 유럽연합(EU), 300년이 훨씬 넘은 미국의 선진 식품안전 규제를 겁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식품안전사고, 기준규격 위반, 이물 등 위반 사례나 행정처분은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중소 식품 제조업체 CEO들은 대부분 살아남는데 급급해 판로개척, 자금조달, 인력 충원, 거래처 요구 사항 대응 등 현안문제에 주로 메여 있다.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여력이 없어 늘 그 대응이 후 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특히 생계형 업체들의 위생관리 시스템은 열악해 행정처분이나 사고에 직면하면 하룻밤 새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고의성 없이 잘 몰라서 발생한 실수나 열악한 시설에서 만들다 보니 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견고한 경제 성장을 유지하고 IMF 세계 경제 위기에서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빨리 극복한 비결은 바로 중소기업의 경쟁력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강한 중소기업을 정부에서 키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추진 등의 정책은 중소기업의 생명을 이어줄지 몰라도 시장에서의 성장과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결국 중소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자리 잡은 안정적인 대기업과의 시장에서의 상생활동이 가장 확률 높고 자연스러운 길일 것이다.

CJ제일제당과 CJ프레시웨이가 공동 출연해 만든 (재) 식품안전 상생 협회가 바로 이런 대·중소기업 상생의 롤 모델이라 생각한다. 이는 중소 식품기업의 식품안전 역량 지원을 통한 사회 공헌과 공유가치 창출을 추구하는 비영리 법인으로 2014년 정부의 불량식품 근절 및 동반성장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재단이 제공하는 무상 이익의 원칙과 수혜 평등의 원칙이다. 벌써 8년째 177개 식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품질·안전에 대한 지도와 교육을 비롯, 각종 학술행사와 분석 지원 등의 사업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혜택을 받은 중소 식품기업들은 식품안전 관리 역량 향상은 물론 매출까지 신장되는 등 대·중소기업 식품안전 상생의 전형적인 성공사례로 여겨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결코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은 그동안 구축한 체계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과 기술,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지원해 주고 그들과 함께 공동브랜드 운영이나 판로개척을 도와 글로벌 강소기업을 탄생시켜 주는 것이 진정한 상생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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