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천연 표시의 경직성-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56)
우리나라 천연 표시의 경직성-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56)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1.05.17 0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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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식품’ 규정 외국과 달라 수출입 혼란
국경 없는 무역시대 제도 국제적 조화 필요
천연 재료 사용해도 열처리 땐 불가
해외, 안전성 우선 최소 열처리 인정
첨가물에 합성 물질 없으면 천연 표시

전 세계적으로 자연식품에 대한 열망과 소비자들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많은 ‘천연(natural)’ 제품들이 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유별나게 천연 사랑을 하고 있는데, 나라별로 ‘천연(天然)’에 대한 정의와 범위 차이로 수출입 시 혼란스럽고 불편함이 크다고 한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특히 미국에서는 천연에 대한 모호한 규정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소송당하는 기업이 많다고 한다. 2014년 제너럴 밀스사는 Nature Valley 제품에 과당 옥수수시럽과 말토덱스트린이 사용됐음에도 불구하고 ‘100% natural’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소비자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2015년 Diamond Foods 사도 Kettle 라인 제품에 ‘natural’ 문구를 잘못 사용해 배상했던 사례도 있다.

‘천연’에 대한 우리나라의 규정은 ‘식품 등의 표시 기준’(식약처 고시 제2016-45호, 2016.6.13)과 ‘건강기능식품의 표시 기준’(식약처 고시 제2016-62호, 2016.6.30.)에 명시돼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천연’으로 표기하려면 “합성향료․착색료․보존료 또는 어떠한 인공이나 수확 후 첨가되는 합성 성분이 제품 내에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비식용 부분의 제거 또는 최소한의 물리적 공정 이외의 공정을 거치지 아니한 식품의 경우”에 표시가 가능하다.

그리고 최소한의 물리적 공정이란 ‘식품․식품첨가물에 대한 천연 표시 관련 식약처 지침’(2016.7.7.)에 명시돼 있는데, “세척, 박피, 압착, 분쇄, 교반, 건조 (60℃ 이상 제외), 냉동, 냉장, 성형, 압출, 여과, 원심분리, 혼합, 폭기, 숙성, 자연발효, 용해를 거친 것”은 천연 표기가 가능하다. 다만 농·임·축·수산물, 유전자변형식품, 나노식품에 대하여는 천연 표시를 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천연 표시 지침은 제 외국과는 달리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열처리 시 천연 원재료만을 사용했더라도 천연 표시가 불가능” 하다. 반면 대부분의 외국은 천연 원재료의 경우 살균을 위한 최소한의 열처리를 인정해 주고 있다.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 않아 천연 표시에 대한 지침이 별도로 없다. 게다가 CODEX(국제규격 위원회), 미국, EU 국가들에서는 열처리된 가공식품이라 할지라도 식품첨가물에 착색료, 인공향료 또는 합성 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으면 천연 표시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ISO/TS 19657에서는 천연으로 보는 가공의 범위에 열처리 등 물리적, 효소적, 미생물학적 가공 공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심지어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그 범위를 넘어가는 가공 공정도 천연의 범위로 본다. 그 외에도 필리핀은 열처리는 물론이고 훈연(smoking)까지도 천연에 포함되며, 캐나다도 살균·멸균을 포함한 가열공정을 최소한의 공정(Minimum processes)으로 인정해 보다 포괄적 가공 범위를 천연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살균 처리된 천연 레몬주스’ 표시가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다. 이에 천연 표기를 허용하고 있고 그 정의를 미리 구체적으로 내려 기업들이 표시 위반으로 행정처분 받는 사례가 선진국에 비해서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공급자들은 가능한 천연을 표시하고 싶어 경계를 넘기도 해 꾸준히 표시 위반 처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소비자들은 천연 원료로만 만들어진 제품이고 영양과 인체 유효성분에 차이가 없다면 열처리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어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성 미생물을 제어하기 위해 열처리된 제품을 더 선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고 국경 없는 무역으로 인한 글로벌 시대에 국가별로 상이한 천연 표시 제도를 국제적으로 조화(harmonization) 시킬 필요가 있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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