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양곡 이물 개선 못하면 도정업체 선택권 달라”
“정부양곡 이물 개선 못하면 도정업체 선택권 달라”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1.11.2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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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공식품 업체 이물 현장 르포] “가공용 쌀=저급품” 잘못된 인식…항의하면 발뺌
실·플라스틱·나사 등 다양…시설 투자해도 역부족
품질 인력이 이물 선별에 매달려 시간·자원 낭비
품질인증제 도입 등 현행 시스템 체질 개선 시급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투입돼야 할 인력이 이물 선별에 매달려 있습니다. 현재 정부양곡품질 시스템은 여전히 가공용쌀은 밥쌀용보다 품질이 떨어져도 된다는 식의 구시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원료 공급업체(도정업체)가 수율에만 집중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이물 혼입건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업체에도 원료 공급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A 쌀가공식품 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쌀가공식품 업계는 전국 120여 개 도정업체로부터 연간 32만 톤에 달하는 정부양곡을 랜덤으로 공급받고 있다. 도정업체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수율(약 72%) 기준에 충족한 뒤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검사를 통과하면 된다.

문제는 품질 검사가 원료곡 전체가 아닌 샘플링으로 이뤄진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이물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이물 종류도 실, 플라스틱, 나사, 벌레 등 다양하다. 업계에선 지속적으로 검사 기준 강화를 주장해 왔으나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왼쪽 사진은 제품화된 현미 누룽지에 실과 풀떼기 등 이물이 혼입된 채로 있다. 해당 제품은 전량 폐기했다. 오른쪽 사진은 톤백에서 발견된 나사. 이러한 금속류가 설비에 들어갈 경우 설비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사진=식품음료신문)
왼쪽 사진은 제품화된 현미 누룽지에 실과 풀떼기 등 이물이 혼입된 채로 있다. 해당 제품은 전량 폐기했다. 오른쪽 사진은 톤백에서 발견된 나사. 이러한 금속류가 설비에 들어갈 경우 설비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사진=식품음료신문)

실제 현장에서의 이러한 문제점은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이물 혼입 문제로 제품 생산 후 폐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며, 심지어 제품 포장 전 단계에선 이물을 찾기 위해 10여 명이 투입되기도 한다. 금속탐지기에서 볼트, 너트 등 금속류는 선별이 되지만 실, 벌레 등은 전적으로 직원 역량에 의존해야 한다.

업체에서 이물에 이처럼 민감한 것은 식품의 이물 혼입은 식약처 의무보고 사항이기 때문. 식약처 조사 결과에 따라 업체는 영업정지 등의 행정 처분을 당할 수 있고 HACCP 지정도 즉시 취소된다.

기자가 방문한 경기도 소재 누룽지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B업체는 월 60~70톤가량의 정부양곡을 도정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톤 단위 포대 60~70개가 들어오는데 평균적으로 1개 이상은 이물이 혼입돼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경기도의 한 누룽지 제조업체는 공급받은 원료곡에 대해 세척 시, 계량 시, 밥 투입 시, 완제품 등 총 4번에 걸쳐 직원들이 꼼꼼하게 직접 이물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사진=식품음료신문)
경기도의 한 누룽지 제조업체는 공급받은 원료곡에 대해 세척 시, 계량 시, 밥 투입 시, 완제품 등 총 4번에 걸쳐 직원들이 꼼꼼하게 직접 이물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사진=식품음료신문)

 이 회사는 정부양곡이 들어오면 곧바로 18℃를 유지하는 창고에 보관한다. 보관 기간은 보통 2주를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창고에서 나온 원료곡은 금속이물탐지기 외에 육안으로 세척단계, 계량단계, 밥 투입단계, 완제품 포장 전 등 총 4번에 걸쳐 이물 검사를 시행한다.

회사 관계자는 “이물 발생에 대한 불만을 도정업체에 전달하면 정부 품질기준을 통과한 원료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된다. 오히려 보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70여 개에 달하는 톤백 중 한 개만 그렇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심각한 이물 혼입건으로 문제 제기를 강하게 하면 도정업체 직원들이 회사를 찾아와서도 오히려 색채선별기 등이 없냐고 되묻는다. 일부 업체에서는 이물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해 최종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색채선별기를 도입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현 시스템에는 책임의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업계서 현미로 공급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무엇보다 책임소재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충남 소재 쌀가루 제조업체는 공급받은 원료곡에 대해 원료투입실부터 4단계에 걸쳐 이물관리를 하고 있다.(제공=업체)
충남 소재 쌀가루 제조업체는 공급받은 원료곡에 대해 원료투입실부터 4단계에 걸쳐 이물관리를 하고 있다.(제공=업체)

 상황은 쌀가공식품업체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하다. 연간 1만 4000여 톤의 원료곡을 사용하는 충남 소재 A업체는 이물관리 투자 설비 비용에만 수억 원을 투입했음에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물 발생 수준이 심각해 도정업체 반품을 요청하면 이번에는 그냥 사용하고 곡물협회 품질 시스템을 통해 개선하겠다는 답변만 반복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료곡 사용업체의 선택권을 부여하던지, 현 시스템에 대한 체질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RPC 품질검사 기관인 농관원이 품질인증제를 도입해 일정 등급 이하의 원료곡은 식품용이 아닌 사료용으로 공급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본지는 도정업체 회원사로 이뤄진 곡물협회 측과 업계 애로사항 및 주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수차례 취재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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