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세(Sugar tax) 포퓰리즘에 빠진 대한민국-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73)
설탕세(Sugar tax) 포퓰리즘에 빠진 대한민국-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73)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2.01.17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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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와 주민 복리증진 묶어 세금 도입 불 지펴
인위적 공급 억제 한계…비가격 정책 우선해야

2021년 7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설탕세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설탕세의 해외사례와 지방세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탄산음료 소비가 줄어드는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배달음식 문화 확산 등의 영향으로 탄산음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가당 섭취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2020년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도 설탕세 도입 가능성을 검토했었고 2021년 2월 가당 음료에 건강부담금을 부과하기 위해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설탕세 도입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간 우리 학계에서만 논의됐던 이슈였는데, 드디어 정치권에서도 다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2021년 2월 강병원 의원 등의 설탕세 제안 배경은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이 1일 총칼로리 섭취량의 10%를 초과할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은 39%, 고혈압은 66%, 당뇨병은 41% 높은 발병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보건기구(WHO)도 설탕의 과다섭취가 비만, 당뇨병, 충치 등의 주원인이며, 건강한 식음료의 소비를 목표로 보조금 등의 재정 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2016년 권고한 바 있다. 또한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늘어나는 당류 섭취 추세 및 비만율 증가 추이를 감안할 때 국민의 식습관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 대안으로 설탕세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바가 있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설탕은 전 세계적으로 ‘21세기의 마약, 담배’로 불릴 정도로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꾸준히 설탕의 달콤함에 젖어 있는데, 데이터를 보면 비만의 원인이 꼭 설탕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중국은 전 세계 비만 1위의 나라인데, 국민 1인당 설탕 소비량은 2016년 기준 11 kg으로 브라질(61 kg)의 1/5, 미국(33 kg)과 영국(34 kg)의 1/3, 우리나라(25 kg)와 세계 평균(24 kg)의 절반에도 미치지도 못한다. 즉, 중국인들의 비만 문제는 설탕 때문만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양의 식사, 기름진 음식, 생활습관 등 다양한 다른 요인들 때문이다.

비만(肥滿)은 몸에서 에너지로 쓰고 남은 여분의 칼로리가 지방의 형태로 몸에 축적된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여분의 칼로리는 설탕의 당(糖) 성분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등 모든 영양분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만의 주범은 엄밀히 말해 설탕이 아니라 ‘초과 섭취된 칼로리’, 그리고 ‘낮은 칼로리 소비량’이다. 즉, 체내 공급되는 영양소의 높은 input, 낮은 output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비만의 원인이 당(糖)이라면 설탕뿐 아니라 과일, 과채주스, 쌀밥, 면을 포함한 당류가 포함된 모든 식품에 주의해야 한다.

만병의 원인인 ‘흡연(吸煙)’은 각종 암과 심혈관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돼 오래전부터 인류는 담뱃세(Cigarette tax)를 부과해왔다. 최근엔 게임중독도 WHO에서 질병으로 등록하도록 권장했다. 게다가 영국, 스페인, 미국 등 주요국을 포함한 해외 45개 국가는 과도한 당(糖)과 고지방이 든 음료나 음식을 당뇨, 비만, 암의 주요 원인이라고 치부하고 국민 건강에 대한 피해와 건강보험재정 손실 초래를 이유로 설탕세(Sugar tax)나 비만세(Fat tax)를 부과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노르웨이가 1922년 고율의 초콜릿 및 설탕 제품세를 도입했고, 2011년 헝가리, 2012년 프랑스와 핀란드에서 탄산음료에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영국, 아일랜드, 2020년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설탕세가 확산되는 추세다. 아시아도 2017년 태국, 2018년 필리핀, 2019년 말레이시아에서 이미 도입됐다. 남미의 멕시코, 칠레도 2014년부터 설탕이 들어간 음료에 도입하기 시작했고 2016년 WHO가 설탕세 부과를 권고한 이후부턴 전 세계적으로 설탕세 도입이 급 확산되는 추세다.

모든 규제가 그러하듯, 이번 설탕세 도입도 일장일단이 있다.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당 성분이 각종 성인병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고 맞선다. 노르웨이는 2018년 사탕·초콜릿 등에 물리는 세금을 전년 대비 무려 83%나 올리자 그다음 해 설탕 섭취량이 10년 전과 비교해 27%나 줄었다고 한다. 영국도 2016년 설탕세 도입 발표 후 청량음료 기업의 절반 이상이 설탕 함량을 줄였고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은 학교 스포츠 시설 확충 등에 사용돼 아동 및 청소년의 비만 예방에 기여했다고 본다. 즉 설탕세는 제품 가격 인상에 의한 소비 감소, 증세에 의한 국고 확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많아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노르웨이에서는 설탕세 인상으로 사탕류의 가격이 오르자,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쇼핑하러 갔고 덴마크에서도 일자리 감소와 저소득층 부담이 늘면서 도입 1년 만에 결국 폐지했다. 게다가 멕시코와 프랑스에서도 설탕세 도입이 탄산음료 섭취를 줄이는 데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하고 핀란드도 설탕세 일부가 이미 폐지된 상태다. 최근 이탈리아 마리오 총리 내각도 코로나사태 극복을 위한 경기 진작책으로 약 11조원 규모의 세금 감면정책을 내놓았는데, 2022년 1월 예정이었던 설탕세 도입 시점을 2023년으로 연기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설탕 제품의 소비는 가격에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설탕세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많은 나라에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식품업계 역시 최근 원자재 값 상승으로 가격을 올린 직후라 또다시 인상을 시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의 소비를 촉발시킬 수 있고, 세금 증가로 중소기업의 투자의지가 약화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가 전반의 영향을 보느라 설탕세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다. 우리 국민의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36.4g, 2018)는 1일총열량의 7.4%에 불과해 WHO 권고기준(10%)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우리 국민의 비만도가 외국에 비해 그리 심각하지 않고 식음료 원가상승에 따른 기업과 서민 부담이 있는 만큼 설탕세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밝혔고, 식약처도 ‘당류저감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조세보다는 ‘덜 달게 먹는 식습관'을 유도하는 대국민 캠페인으로 정책 방향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한국지방세연구원의 보고서에서 “가당의 과잉섭취를 억제하고 올바른 식습관을 유도하기 위한 지방세로서의 설탕세 도입 정책은 주민 복리증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지자체의 역할로 적절하다.”고 언급해 각 지자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설탕세 부과 논의는 국민의 비만을 줄이고 건강을 유지하자는 좋은 취지다. 그러나 영양섭취 불균형은 개개인이 식습관으로 조절해야만 성공할 수 있지 정부의 인위적인 공급억제 정책으로는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지나친 당(糖) 섭취와 이로 인한 건강문제를 경계해야겠지만, 잘못된 논리로 설탕을 마녀사냥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본다. 한때 약(藥)으로도 사용되며 오랫동안 인류에 도움을 주던 고마운 먹거리에 대해 불평등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주의를 촉구시킬 수는 있겠으나, 음식에 대한 괜한 걱정인 푸드패디즘을 유발할 뿐 인류 질병의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탕세로 인한 가격 인상, 역진세 등 부작용을 막는 대책과 함께 소비자단체와 함께하는 캠페인 등 비가격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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