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프간 콩 전도사
[칼럼] 아프간 콩 전도사
  • 이철호 명예교수
  • 승인 2023.10.31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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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영 박사 불모지서 연간 2000톤 생산 기여
영유아·산모에 단백질 공급…콩의 원산지로 한반도 부각
이철호 명예교수(고려대·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이철호 명예교수
△이철호 명예교수

지난 17일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그레이스 국제학교 강당에서 ‘영양과교육 인터내쇼날(NEI)’ 20주년 감사 모임이 30여 명의 초청 인사들을 모시고 작지만 의미 있는 모임을 가졌다. NEI 설립자 권순영 박사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콩 재배 보급 프로젝트를 후원해온 후원자들을 초청하여 아프가니스탄 사역 보고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였다.

권순영 박사는 고려대학교 농화학과 65학번으로 필자의 2년 후배로 학과 동아리 모임을 같이한 사이이다. 졸업 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식품생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의 미국 뉴저지 연구소에서 영양식 개발 디렉터로 일했다. 당시 인근에 있는 예일대학의 전혜성 교수와 가깝게 지내 한국인 2세를 위한 계간지(Korean and Korean American Studies Bulletin) 6권(1996)에 필자와 공동 초청 에디터로 “한국 음식의 지혜(The Wisdom of Korean Food)" 특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그의 지식을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기를 바라던 중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과 오랜 내전으로 신생아 4명 중 1명이 5세가 되기 전에 영양실조로 죽고 산모 5명 중 1명이 사망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과 산모들을 돕기로 작정했다.

그의 연구실에서 개발한 우유와 콩으로 만든 이유식 2종류를 가지고 가서 아프간 어린이와 산모들에게 먹여보니 모두 콩으로 만든 이유식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콩을 재배해본 적이 없고 콩 음식을 알지 못했다.

이에 권 박사는 NEI를 설립하여 미국에서 알고 지낸 콩 재배 육종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콩을 재배하고 수확하여 그들의 음식에 첨가하여 단백질 공급을 늘리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한 아프간 사람들의 협력으로 콩을 모르던 나라에 콩밭이 늘어나고 어린이와 산모들의 영양상태가 눈에 띄게 개선되어 아프간 정부의 지원은 물론 세계식량계획(WFP)과 한국 및 일본 정부의 후원도 받게 되었다.

권순영 박사는 2008년 네슬레를 조기 퇴직하고 NEI 일에 전념하고 있다. 2006년 300kg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콩 수확량은 현재 2000톤을 넘었으며, 콩가루 공장, 두유 공장, 콩 가공식품 공장 등이 지역마다 설립되어 콩의 재배, 육종, 저장, 가공, 유통 기술이 아프가니스탄에 정착되도록 했다.

미군 철수 후 탈레반 정부는 모든 외국 단체들을 추방했으나 NEI의 활동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권순영 박사는 2021년 아산 봉사상을 받았다.

권순영 박사의 헌신과 노력은 인류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중국 원산지로 알려졌던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남만주임이 최근의 고고학 발굴과 고대사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콩은 기원전 2천 년 경에 고조선 지역에서 우리 민족의 조상인 동이족(東夷族, Eastern Archers)에 의하여 재배되고 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들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콩은 날것으로 먹으면 심한 설사를 일으켜 먹지 못하는 식물로 여겨졌으나 원시 토기 문화를 발전시킨 동이족이 콩을 토기에 담아 끓임으로써 트립신 저해물질을 제거하여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을 먹게 되면서 동이족은 체격이 장대해지고 인구가 늘어 동북아시아의 선진 민족으로 성장하였다.

콩은 기원전 7세기에 중국으로 전래되었으며, 4~7세기 중국 난민들의 이주를 통해 동남아로 전파되었다. 콩이 서양에 소개된 것은 18세기이며, 19세기 말 미국 농학자들에 의한 기계화 수확이 가능한 수형으로의 개량육종과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의 4대 곡물(쌀, 밀, 옥수수, 콩)이 되었다.

지난 3년간 평균 세계 콩 생산량은 연간 3억 6천만 톤으로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주로 생산되며, 세계 콩 수출량의 60%를 중국이 수입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동이족이 처음 재배하고 식용으로 사용한 콩을 21세기에 아프가니스탄에 소개하여 중동지역에서 콩을 재배하고 먹게 한 사람이 한국인 권순영 박사이다. 20주년 감사 모임에서 축사에 나선 NEI 고문 이영일 전 의원이 권순영 박사야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주장한 것은 공치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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