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요청-원가 부담 사이 업계 고심
물가 안정 요청-원가 부담 사이 업계 고심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3.11.06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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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값 등 올라 감내 어려워…슈링크플레이션 현상도
전문가“제품가 인상, 소비자 판단 맡기는 게 시장 논리”
맥도날드·맘스터치 등 외국계 외식 업체는 “우린 몰라”
BBQ·피자알볼로 인하와 역행…국내 동참 업체 허탈

정부의 물가안정 요청에도 식품·외식업계 가격인상 러시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만 원·부자재 가격 상승 폭이 너무 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엘니뇨 등 이상기후가 점점 거세지고 러-우 사태와 더불어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까지 불거지며 일부 수입 원자재의 수급불안 우려로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여기에 고금리로 금융 비용이 늘었고 인건비, 전기·가스요금 등도 상승했다.

상황이 이러자 정부가 지속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 관련 학과 한 교수는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나서 어느 정도 제어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일일이 품목을 나열해 직접 통제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라며 “이럴 경우 ‘눈 가리고 아옹’ 식의 업계의 꼼수만 늘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가격 올리는 것에 부담을 가진 식품업계에서 제품 가격과 내용물은 유지하되, 용량만 줄여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보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inflation)’ 꼼수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원가 압박으로 버티기 어렵다면 차라리 당당히 가격을 올리고 소비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보다 이상적인 시장 경제 논리라는 주장이다. 정부는 직접 개입이 아닌 큰 틀에서 금리 등으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결국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주류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주정 등 원·부자재 가격이 올라 올 초 가격인상을 추진했으나 기재부의 압박으로 무산된 바 있는 주류업계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오비맥주는 지난달 11일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를 평균 6.9% 올렸다. 작년 3월 이후 19개월 만이다.

하이트진로는 오는 9일부터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 출고가를 6.95% 올린다고 발표했다. 주정 값이 지난 2년간 약 20% 가까이 오르고, 신병 가격은 21.6%나 인상되는 등 전방위적으로 큰 폭의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다. 롯데칠성음료, 무학, 보해양조 등 다른 소주업체도 가격 인상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은 외식도 마찬가지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뭇 다르다. 글로벌 업체는 보란 듯이 가격을 올리고 있지만 국내 기업은 오히려 가격을 내리고 있다.

맥도날드는 2일부터 빅맥을 포함해 총 13개 메뉴의 가격을 평균 3.7% 올렸다. 대표 메뉴인 빅맥은 가격이 5200원에서 300원 올랐다. 맥도날드는 올해 2월에도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5.4% 올린 바 있다. 8개월 만에 가격을 또 올린 것이다.

맘스터치도 지난달 31일부터 닭가슴살 패티를 사용하는 버거 4종의 가격을 300원 인상했다. 맘스터치 역시 올 초 가격을 올린 바 있다. 당시 같이 가격을 인상했던 롯데리아, 버거킹 등은 아직까지 인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내 업체인 BBQ와 피자알볼로는 물가 안정 차원에서 가격을 인하하고 나섰다. BBQ는 올리브오일 100%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50% 블랜딩 오일로 변경하며 기존 판매가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피자알볼로는 전 제품 가격을 평균 4000원에서 최대 6500원 할인 판매하고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역효과를 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에게는 물가 안정을 강요하면서 글로벌업체에서 보란 듯이 가격을 올리면 정부 정책에 동참하는 국내 업체들은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외식 관련 단체 한 관계자는 “고금리로 금융 비용 부담이 커졌고 국제유가도 올라 물류비 부담도 확대됐다. 전 세계적인 고물가 현상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정부가)가격을 힘으로 누르다 보면 이러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소비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물가안정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업계는 정부가 아닌 소비자들의 입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문에 소비자들의 감시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글로벌 업체들이 긴장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이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한 관계자는 “글로벌 업체들이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어도 소비자의 신뢰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며 “물가감시센터를 통해 부당하게 가격이 인상되지 않도록 감시 기능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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