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곡물 보급 맛있는 가공식품 개발을
[기고] 통곡물 보급 맛있는 가공식품 개발을
  • 신동화 명예교수
  • 승인 2020.06.22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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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명예교수 (전북대학교,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명예교수

많은 언론 매체와 과학자들은 곡물의 건강 기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랜 기간 인간의 유전자 구성에 영향을 미쳤던 먹이가 주로 곡물이었고 이 곡물은 다른 동물과 같이 다른 처리하지 않은 채 날것 그대로 혹은 단순 분쇄해 먹었기 때문에 이 조건에 맞게 적응해왔을 것이다.

통곡물에 들어있는 성분에 생리기능이 맞춰졌고 성분과 기능을 가장 잘 이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류가 이 지구에 자리 잡은 250만 년간 먹는 것에 가장 큰 변화는 불을 이용한 조리기술을 도입해 음식의 맛과 형태를 바꾼 것 외에는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겨우 500년 전부터 과학기술 발전으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면서 가공식품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주식인 쌀도 찧어 쌀겨를 벗겨내고 밀은 제분해 맛이 없는 밀기울은 동물의 사료로 별도 분리했다.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중요 단백질 자원인 콩도 갈고 추출해 인간이 계속 먹어왔던 탄수화물과 여러 기능이 잘 알려진 식이섬유를 거의 완벽하게 분리해 장내로 들어가는 기회를 박탈했다.

이런 과학기술 발달로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식품 원료로 통곡물을 그대로 먹는 기회가 아주 드물어졌다. 자연스럽게 수백만 년 섭취하며 정이 들었던 통곡물 속에 함유된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 파이토케미칼 등 미량성분들을 접할 기회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통곡물에 대한 장점은 근래 학술논문으로 많이 발표되고 있다. 고혈압 예방, 비만 억제, 심장병, 암 발생빈도를 낮추며 당뇨 발생도 지연시키는 등 현대인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성병을 차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즉 석기시대 이후 우리 인간이 먹었던 통곡물과 잡식성으로 돌아가면 이런 만성병은 크게 벗겨 나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현대에 사는 소비자가 과연 통곡물을 그대로 먹고 즐길 수 있겠는가. 아마 상당히 어려워할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감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중 맛과 향이 가장 좋게 영향을 미치며 향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 눈길을 끌 수 없다.

건강을 강조하나 그것은 입을 통과한 이후 얘기다. 내가 먹을 때 호감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또다시 찾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의학계나 식품학계 더 나아가 관계기관에서 설탕과 소금 섭취량을 줄이라고 권고하더라도 식품업계에서는 그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의 미각에서 가장 선호하는 맛이 단맛과 짠맛인데, 이 두 가지 맛을 빼버리면 그것은 식품으로서의 가치와 선호도가 반감한다. 소비자 선택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한 식품업계가 어찌 설탕과 소금을 도외시할 수 있겠는가.

통곡물도 똑같은 이론이 적용된다. 맛이 없는데 건강만을 내세워 강요할 수는 없다. 통곡물은 소비자가 원하고 또 다음에 찾을 수 있도록 식품 가공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대표적인 기능성을 가진 보리도 튀김 과자나 밀가루와 함께 섞은 통밀가루 국수, 비스킷 등이 소비자의 큰 거부반응 없이 시장에 형성돼 있다.

이제 건강을 앞세워 소비를 촉진하려는 발상 대신 통곡물을 사용하되, 맛있는 가공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보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곡물을 이용할 수 있게 기호성을 고려한 품종육종부터 시작해 가공수단 그리고 조리방법 등을 복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쌀의 경우 영양의 보고인 쌀겨를 일부 남기고 쌀눈을 크게 하는 도정방법을 개선하면 크게 영양개선이 가능하다. 당연히 품종육종이 뒷받침돼야 한다. 보리도 종구를 최대한 낮게 하면서 기능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끈거림을 최소화한 새로운 품종이 나와야 한다. 근래 유색보리 등은 기능성에 관심 있는 소비자를 확보하는데 좋은 시도다.

밀이나 옥수수 등도 우리 노력에 따라 통곡물을 그대로 혹은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향미를 선호하는 인간의 본능을 거슬리는 방법으로 식품을 보급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자에는 적용할 수 있으나 대다수 비 환자에게는 적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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