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 재포장 금지’ 7월 시행…모호한 규정에 업계 ‘멘붕’
‘묶음 재포장 금지’ 7월 시행…모호한 규정에 업계 ‘멘붕’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0.06.2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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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쓰레기 줄이기 위한 강한 규제…정의 모호·기준 불명확·국산 차별 등 논란

“그러니까 처음 만들 때 잘 만들면 되잖아요!”

18일 식품산업협회에서 열린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와 식품·유통업계간 회의에서 강승희 공업사무관은 ‘재포장 가이드라인’에 대한 업계 우려에 대해 이같이 일축했다.

다음달 1일부터는 판촉을 목적으로 포장된 단위 제품을 2개 이상 묶어 추가 포장하는 재포장이 전면 금지된다.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 실시하던 ‘덤 마케팅’이 사라지는 것이다. 과도하게 발생하는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강력 규제라 할 수 있는데, 식품업계에서는 산업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위험성을 경고하며 반대의 입장을 펼치고 있지만 환경부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문제는 시행 일주일가량 남짓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재포장 정의가 모호하고, 예외기준의 판단이 불명확해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 쟁 점 -

같은 제품, 대형 마트 판매 재포장 vs 창고형 매장은 예외
할인 안 하면 묶은판매 가능…불공정 경쟁 업계 발전 저해
재포장 관련 ‘덤 마케팅’ 유통 요구 많아…책임 주체 불분명
시행 시기 국산 제조일자-수입산 통관일자 기준…통일 필요

영세업체, 이해 부족·시간 소요…6개월~1년 유예기간 두어야

환경부 “관련 업계 자발적 협약 땐 TF 통해 해결 방안 모색”

환경부가 이날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재포장에 해당하는 경우는 △1+1, 2+1 등과 같이 판촉을 위해 포장된 단위 제품을 2개 이상 묶어 추가 포장하는 경우 △판매되지 않는 사은품 등을 포장된 단위 제품과 함께 묶어 포장하는 경우 △여러 제품을 묶어 포장하는 경우 등이다.

재포장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는 △낱개 판매가 아닌 일정 수량을 묶어 하나의 제품으로 판매하는 경우(슬라이스 치즈, 도시락용 김 등) △판촉을 위한 제품이 아닌 경우 등이다.

재포장이지만 예외인 경우는 △판촉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 △수송·보관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창고형 매장에서 대량 판매하기 위한 경우 △고객이 선물 포장을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즉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2000원 판매 제품을 2개 묶어 2000원에 판매하면 재포장이고, 4000원에 판매하면 예외다. 또 똑같은 제품이라도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면 재포장이고, 코스트코 등 창고형 매장에서 팔면 예외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모호한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혼란만 야기한다는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업계 한 관계자는 “환경부의 의중이 포장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것인지, 업계의 마케팅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인지 모호하다”며 “가격 할인만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묶어 판매할 수 있다는 논리 자체가 황당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창고형 마트에서는 예외로 한다는 것 자체가 단위제품 및 복수의 단위제품으로 구성된 종합제품의 존재를 인정하는 현행 법령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대용량 판매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창고형 매장으로 재포장 예외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한 경쟁을 방치하고, 국내 업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포장을 양산하는 ‘덤 마케팅’은 제조사보다는 유통사에서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럴 경우 원인 제공자에 책임이 있는 건지,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것인지 책임을 질 주체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CJ제일제당, 동원F&B, SPC그룹, 대상, 풀무원, 농심, 동서식품, 오뚜기, 롯데칠성음료, 매일유업, 오리온, 정관장, 빙그레, 샘표 등 관련 업계 50여 명이 참석해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재포장 금지’에 대한 업계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사진=식품음료신문)
△이날 회의에는 CJ제일제당, 동원F&B, SPC그룹, 대상, 풀무원, 농심, 동서식품, 오뚜기, 롯데칠성음료, 매일유업, 오리온, 정관장, 빙그레, 샘표 등 관련 업계 50여 명이 참석해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재포장 금지’에 대한 업계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사진=식품음료신문)

강승희 공업사무관은 “낱개 단위제품을 가격할인 없이 묶음 상품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겠나”라며 “책임 문제는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제조사·유통사간 상태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양벌 규정을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양벌제를 하면 서로가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창고형 매장에서의 예외 규정은 좀 더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제품과 수입 제품의 시행 시기 여부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는 제조일자를 기준으로, 수입식품은 통관일자를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수입식품은 통관일자 파악이 사실상 어렵다. 수입식품도 제조일자를 하는 것이 업계 혼란을 막을 수 있으며, 단 운송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좀 더 유예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강 사무관은 “수입식품 통관일자는 관세청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지만 제조일자는 더 파악이 힘들다는 것이 환경부의 판단”이라며 “제조일자가 공적인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을 증빙하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라면에 대한 부분도 제기됐다. 라면은 ‘덤 마케팅’의 대표 주자로, 흔히 4개를 사면 1개를 더 얹어주는 행사가 일반적이다. 공 사무관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 라면 묶음 포장 자체를 없애야 한다. 소비자들이 모두 묶음 포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낱개 판매 위주의 편의점과 묶음 포장 위주의 대형마트의 라면 매출은 비슷하다. 묶음 포장에 대한 니즈가 생각보다 높지 않아 추후에는 이 부분도 고려해볼 판단이 있다”고 표명했다.

환경부의 이 같은 단호한 의지에 업계에서는 마지막 카드로 유예기간을 꺼내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식품업계 3만여 곳 중 97%에 달하는 곳이 영세업체다. 이번 ‘재포장금지법’은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많아 대기업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영세업체까지 이해를 구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산업계의 준비시간이 부족하다. 포장 형태 변경에 따른 공정·설비 등 레이아웃 변경이 필요한데, 이는 최소 8개월에서 12개월의 준비 시간이 요구된다”며 “특히 폐기물 절감을 위한 불용포장재(포장재 재고) 소진 기간도 필요하고, 수입제품의 경우는 한국만을 위해 포장단위를 변경하는 것이 어려워 통관되는 제품을 바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식품 표시 규제의 경우 국무조정실 지침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법령 개정시 1년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일을 짝수년도 1월 1일로 통일해 영업자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강 사무관은 “유예기간은 3개월 계도기간 부여 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업계 의견을 수렴해 재논의하겠다”면서도 “영세업체의 경우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사업전환자금 지원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영세업체 역시 유예기간 이후에는 충분이 정부 정책방향을 쫓아올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업계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룹과 제조·수입·유통·온라인 등 각 분야가 자발적 업무협약을 체결한다면 환경부에서도 이를 지원할 수 있는 TF를 마련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일정 유예기간을 두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환경부는 독일 등 선진국들의 신포장기법 도입도 검토하고 있으며, 협의체를 통해 포장개선에 대해서도 단계별로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부는 향후 재포장에 대한 사례집을 발간해 관련 업계에 배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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