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의 식품 관련 재포장 금지 정책-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14)
환경부의 식품 관련 재포장 금지 정책-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14)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0.06.29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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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 빠른 판단으로 한 발 물러선 게 불행 중 다행

환경부는 지난 6월 18일 유통업체와 식품업계 등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의 하위 법령인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일명 재포장금지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것은 환경부가 지난 1월 28일 개정·공포한 법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다. 그러나 며칠 후 환경부는 올 7월 1일부터 시행하려던 기준을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키로 했다. 반겨야 할지 오락가락 행정이라 비난해야 할지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당초 환경부는 여러 제품을 재포장해 할인 판매하는 묶음 상품을 환경보호 차원에서 금지하려 했었는데, 규제 부서의 특성상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았고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는 등 불합리한 부분이 커 반대 여론이 높았던 상황이었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환경부의 「재포장금지법」이 식품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환경부가 내세운 “과대포장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대원칙은 명분도 있고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환경부의 재포장 가이드라인은 할인판매 자체를 위축시켜 시장과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고 묶음 할인판매라는 정상적인 마케팅 활동을 금지시키는 무리수라는 비판도 큰 상황이다.

당초 제시된 가이드라인은 공장에서는 과대포장이 괜찮고 유통에서는 안 되고, 소형매장은 되고 33m2 이상 큰 매장은 안 되고, 창고형 매장은 봐주고, 온라인쇼핑은 모르고, 수입업체는 안되고, 가격을 할인한 묶음판매는 안되고, 투명테이프와 노끈은 재포장 규제에서 제외하는 등 예외 기준이 불명확해 시장의 혼란을 야기했었다. 환경부의 재포장 규제를 어기면 「자원재활용법」 41조에 따라 건당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적용된다. 이는 정부가 선을 넘어 시장에 너무 과도하게 관여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환경부가 빠른 판단으로 한 발짝 물러나 숙고한다고 선언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한다.

환경부는 “비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대원칙과 법으로 의무화할 부분, 민간 자율로 할 부분을 큰 틀로 정해 공공부문, 민간부문, 소비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정부가 나서서 법이든, 국가 예산이든 투입해 보완하는 순서로 추진해야 무리가 없다. 시장에서 자연스레 정해질 불확실하고 디테일한 방법론까지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으로 미리 정해, 제시하고 간섭하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부가 시장을 안다고 해봤자 기업만큼 잘 알 수는 없다. 또한 시장엔 사람이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가 너무나 많다. 정부는 큰 틀에서 규제든 인센티브 든 정책의 골격만 정하고 세세한 수단과 방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재 사용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선물용 과대포장이 많고 온라인 구매와 배달이 활성화돼 택배나 우편을 주로 이용하다 보니 다소 과다하게 포장하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플라스틱 포장에 대한 규제도 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녹색소비자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64%가 과대포장으로 불편함을 겪었다고 한다. 그 중 대다수인 81%가 과대포장을 낭비로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 명절 선물세트를 매우 시급한 사회문제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과대포장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물론 식품의 품질과 안전 유지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식품 기업들은 판촉용 묶음 등 자발적으로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고 소비자들도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 줄이기와 과대포장 근절에 앞장서야 한다. 물론 원가 상승으로 제품 값이 오를 수 있으나 이 정도는 인류가 부담해야 하는 환경 부담금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사태로 세상이 급변했다. 코로나 이전에 만들어진 정책들 특히, 환경 관련 규제들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COVID-19로 국가적 경제위기가 왔고 국민들 생계도 어려워졌다. 비축식량이 필요한 상황이며 지금 당장 인류의 생존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됐다. COVID-19 이후 지금의 소비자는 환경보다는 저렴한 가격, 가성비를 더욱 중요시하게 됐고 종이 등 ‘친환경 포장’보다 식품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장기 보존하는 ‘안전하고 내구성 있는 포장’을 더욱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식품 재포장 관련 제도 뿐 아니라 COVID-19 이전에 결정돼 지금 시행 직전인 모든 규제들을 다시 한 번 살펴봤음 한다. 제도와 정책은 급변하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신 또 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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