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식품 시장 요동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식품 시장 요동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2.03.28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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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옥수수 등 수입가 급등 국내 가격 상반기 인상 불가피…물량 확보도 어려워
라면·빵·과자 등 연쇄적 가격 상승 불 보듯
식품 기업에도 타격…수출 제동·이익 감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장기화가 전 세계 식량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 식량 시스템은 코로나19 발발과 동시에 압박을 받아 왔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 밀 수출 1위 국가이고, 우크라이나는 5위에 해당한다. 4대 식물성 기름 중 하나인 해바라기씨유 수출 1, 2위 국가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다. 옥수수, 대두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히 밀(소맥)과 옥수수 생산량이 많은 우크라이나의 수출길이 막힌 것은 타격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2020년 밀 2400만 톤을 수확해 1800만 톤을 수출했다. 1800만 톤에 달하는 밀의 발목이 묶인 것이다.

곡물 거래 단위인 1부셸당 가격은 스위프트 제재 직전 8.6달러에서 11.34달러까지 올라 불과 4거래일 만에 31% 폭등했고, 옥수수 가격도 14%나 올랐다. 밀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이고, 옥수수는 지난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다.

해외농업 관측 기관인 농경연 관계자는 “곡물 단가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우리나라도 3개월에서 5개월 후에는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월 기준 곡물 수입량은 196만 4000톤, 수입총액은 7억 5831만 달러로 집계됐다. 톤당 가격은 386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306달러)보다 26% 올랐다. 2020년 2월(262달러)과 비교해서는 47.4% 증가했다. 특히 밀은 톤당 가격 369달러로 1년 전보다 37.3% 올랐고, 옥수수는 톤당(335달러) 40.1% 상승했다.

밀 자급률 1% 미만으로, 밀 수입 의존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통해 수입하는 연간 밀 연간 수입량은 전체 1540만 톤 중 약 10%를 차지한다.

이미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 밀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악재가 더해진 것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가격 조사 결과 작년 한해 CJ제일제당 ‘백설 밀가루 중력분(1kg)’은 10.1%, 대한제분 ‘곰표 밀가루 중력분(1kg)’은 10.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 식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Y대표는 “코로나19 이후 밀가루, 옥수수, 설탕 등의 가격이 많게는 50~60% 이상 올랐다. 더 큰 문제는 물량을 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상반기 내로 가격이 또 오를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는데, 사업 존폐 위기에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러-우 사태로 밀가루 가격은 상반기 내 추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대한제분과 CJ제일제당, 삼양사 등 주요 밀가루 제조사의 경우 국제 밀 가격 동향을 살피며 B2B 제품 공급 단가를 조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원가 부담 한계치에 다다른 만큼 가격 인상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밀가루 가격의 상승은 자연스레 라면·과자·빵·피자·햄버거 등 밀가루를 쓰는 식품들의 연쇄적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큰 폭의 가격 인상이 이루어졌던 라면, 과자 빵 등 밀을 주요 원재료로 하는 가공식품 가격이 올해 또 인상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 상반기까지 가공식품 품목들은 최소 3.5%에서 최대 12.6%까지 가격 인상이 이뤄졌다.

이에 정부는 제동이 걸린 원활한 밀 수입을 위해 수입선 변경, 대체입찰 등 대응방안을 고심 중이며, 밀 등 국제곡물가격 상승 시 업계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원료구매자금(식품 1280억 원, 금리 2.5~3.0%)의 금리 인하 및 지원 규모 확대 방안에 대해 관계 부처와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밀 생산단지에 ‘국산밀재배품질관리지원단’을 운영해 현장 연구를 강화하고, 국산 밀 품질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보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현재 1% 내외인 밀 자급률을 2025년까지 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김홍기 모스크바국립대 초빙교수는 “앞으로는 우리 기업도 해외 현지에 직접 진출하는 활로를 개척해야 할 시기다. 그래야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이 작동하지 않게 될 때 우리 자체역량으로 위기대응이 순조로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러-우 사태는 우리 식품기업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롯데푸드는 올해 러시아에 캔햄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잠정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로 국제사회의 제제와 환율 하락 등 위험부담이 커지자 러시아 진출 계획을 거둬들인 것이다.

오리온,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팔도 등 러시아 현지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다행히 생산에 제동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루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이익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초코파이’로 러시아 현지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오리온은 현재 3개월 분량의 원재료를 확보했으며 올 상반기 내 가동을 목표한 러시아 트립쪼바 신공장 건설도 변동없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오리온의 러시아법인 매출액은 작년 기준 1170억 원에 달한다.

‘도시락’ 컵라면으로 러시아 용기면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팔도도 작년부터 공급량 확대를 위해 약 282억 원을 들여 생산 라인과 일부 건물을 증축하고 있다. 공사 막바지 단계로 올 상반기 완공을 목표하고 있다. 롯데제과도 올 초 약 340억 원을 투입해 초코파이 생산라인과 창고 건물을 증축하고 러시아 현지에서 20% 이상 성장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들 업체는 현재로선 정상적으로 생산과 영업을 진행 중이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원료 수급 확보를 대비해 육로 물류가 가능한 인근 국가에서 원료를 조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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