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정제 식품의 시대-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50)
정밀·정제 식품의 시대-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50)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3.08.2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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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식품=프리미엄 제품’…MSG·정제염 등 해당
배양육 등 부상…거부감 줄이고 기술 확보해야

요즘 식품시장에 ‘정밀’ 식품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미국 소비자들은 선진 국민답게 정밀 발효기술, 배양육 등 식품가공 신(新)기술에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수용 자세를 보인다고 한다.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 41%는 잘 모르고 익숙지 않은 정밀 발효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을 구매할 의향을 보였다고 하고 기술에 익숙해지면 80%가 구매 의향을 나타냈다고 한다. 또 소비자 60%는 안전을 최우선 관심사로 꼽았고 맛보다는 제품의 안전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정밀(精密)이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세함”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정밀식품은 나쁠 게 없고 오히려 프리미엄 식품이다. 또한 정제(精製)는 “정성을 들여 정밀하게 잘 만듦”, “물질에 섞인 불순물을 없애 그 물질을 더 순수하게 함”이라고 정의돼 있다. 위키백과에서도 정제 식품을 가공, 도정 등을 통하여 불순물과 색소, 속꺼풀 따위를 제거한 식품으로 정의돼 있고 흰 설탕, 흰 밀가루, 흰 조미료, 흰 소금 등이 있다고 한다.

즉, 정제는 영양소가 제거되거나 나쁜 물질이 혼입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원물로부터 불순물이나 독(毒), 위해인자를 제거하거나 원물을 보호하던 껍질, 색소 등 먹어도 영양소가 되지 않는 핵심적이지 않은 부위를 제외하는 행위로 원물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다. 정제라는 단어를 영어로 살펴보면 refine, purification이며, 정밀은 precise, accurate다. 한 마디로 이물질을 제거해 깨끗하게 만들어 고급화한다는 좋은 의미다. 과거 일본에서 정제 식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깨끗하고 귀한 프리미엄 식품으로 선망의 대상이 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하고 위생적이고 정밀하게 만든 식품이라도 사람이 손을 대거나 새로운 것이라면 거부반응부터 보이는 우리 소비자들의 보수적인 의식은 다른 선진 국민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우리만큼 소비자들이 천연과 전통에 집착하는 나라가 있을까?

최근 식품가공기술의 발달로 대량 생산해 쉽고 싸게 정제된 음식을 접하게 되다 보니 너무나 흔해져서 그 가치가 평가절하 돼 버린 것이다. 사실 무엇이든 비싸고 희소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오히려 바로 먹기도 어렵고 저장도 쉽지 않아 잘 유통되지 못했던 천연 식재료 원물 그 자체가 희소성과 향수 마케팅에 편승해 오히려 프리미엄 식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제 밀가루와 정제염은 나쁘고 통곡, 쌀, 천일염은 몸에 좋다는 괴담들이 주로 엉터리 쇼닥터나 쉐프들로부터 시작돼 난무했던 때도 있었다.

사실 정제는 나쁜 것을 제거해 핵심만 남기는 빼기 과정이다. 돈을 들여 힘들게 정제한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천연 그대로 보다 천시당하고 있는 대표적 음식이 바로 설탕과 소금이다. 백설탕은 원당, 흑설탕을 정제한 것이고, 정제 소금은 바닷물을 사용해 부유물을 제거한 후 필터(이온교환막)를 통해 중금속과 불순물을 걸러내고 증발관으로 끓여 만든 소금이라 염화나트륨을 제외한 다른 미네랄이나 이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천일염은 개펄인 염전에서 해수를 증발시키고 바닥을 긁어 얻기 때문에 이물질도 많고 토사(土沙)로부터 유래하는 미네랄이 아주 많다. 어떻게 보면 염화나트륨의 농도가 높은 순수한 정제염이 진짜 소금이라 봐야 하는데도 말이다.

우리 민족의 독특한 천연(자연) 로망은 사실 이 이슈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천연 마케팅이 한몫했다. 천연이 좋은 점도 있으나 기능이나 영양 측면에서 인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고 천연상태의 독성이나 위험을 제거해줘야 식품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천연물은 대부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 독성을 갖고 있다. 과학적 측면에서 제품의 실질적 가치를 보면 천연보다 정제가 프리미엄이라고 봐야 한다.

정밀 발효는 미생물의 방대한 생물학적 다양성을 활용해 식용색소나 향료, 단백질 등을 유용한 성분을 생산할 수 있으며, 대체하고자 하는 제품과 동일한 제품도 만들 수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배양육도 정밀 발효가 핵심이라고 한다. 과거 논란이 됐던 MSG도 사실은 설탕을 원료로 발효 기술로 만든 물질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소비자들의 우호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많은 기업이 정밀 발효기술이나 정제 기술을 이용한 식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도 더 이상 천연의 환상에서 벗어나 세계적 흐름의 식품 정밀, 정제 기술 확보에 더욱더 공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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