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썹 등 기록 후 승인권자 서명 있어야 인정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더 낫다”라는 말이 시사해 주듯,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처음에는 또렷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잊히거나 비슷한 기억과 혼동할 수 있어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기록물은 또렷하지는 않아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언제든 활용할 수 있기에 기록과 문서화는 매우 중요하다.
요즘 세상은 문서 대부분이 전자문서화되어 컴퓨터나 서버에 저장할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수정이나 위·변조가 불가능해 없애려 해도 없앨 수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문서를 생산해 공유하고 배포하고 보관한다. 각 개인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생산한 기록이나 문서들을 모두 모아둔다면 아마도 자신이 사는 집을 다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국내 대그룹의 대표 중 한 분은 스프링 된 두꺼운 노트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회의는 물론 간단한 미팅에서 오가는 내용도 그때그때 기록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회의 때는 기록된 내용을 미리 확인하고 참석해 꼼꼼히 업무를 챙긴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참석자들에게 “적자생존, 적어야 산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기록과 문서화의 중요성을 아는 경영자인 것이다.
문서와 기록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구분이 된다. 문서란 특정한 활동이나 프로세스가 어떻게 실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라면, 기록은 이 특정 활동이나 프로세스가 실행된 내용을 기재하는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문서화란 특정 주제 또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정보의 수집, 구성 및 보급을 의미함으로 정의한다. 또 문서는 사무 행위, 요건, 절차 또는 결과를 보고 및 정보보관을 목적으로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것과 전자매체에서 작성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록은 제품의 특성 및 성능 또는 환경요인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결과와 그에 대한 객관적인 증빙을 제공하는 완결된 문서로 표현한다.
식품 및 축산물 안전관리인증기준 제8조 기록관리에서는 HACCP 기준에 따라 관리되는 기록을 2년 이상 보관하게 되어 있다. 기록은 작성자, 작성일자와 시간을 적고 반드시 서명해야 한다. ISO나 식품·축산물안전관리인증기준 또는 어떤 시스템인증에서도 최종승인권자의 서명이 없으면 공식 문서로 인정받을 수 없다.
기업경영 특히 식품업계에서는 HACCP이나 ISO 등 인증받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운영되고 있다 사실을 말로는 입증할 수 없다. 모든 실행사항은 기록된 문서로 증명할 수 있다. 각종 민원이나 소송 등에서도 기록이나 문서로 관련 내용을 증명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거나 패소하기에 십상이다.
사람의 기억에서는 잊혀 가던 것들도 보관된 기록이나 사진, 영상 등을 보게 되면, 이전 기억 속 상황이나 분위기, 추억 등이 소환되어 이야기가 재생되고 새삼 즐거움이나 기쁨을 되새기며 미소 짓기도 한다.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창립 10주년, 30주년, 50주년, 100주년 등 기념이 될만한 때에 그동안의 주요 경영활동과 성장 과정의 각종 기록물, 문서 등을 모아 ○○주년사(史)를 발간하는 것도 이를 통해 흐려지기 쉬운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방향성을 선명하게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내가 기록하고 작성하는 문서의 품질이 곧 나의 품질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작성자뿐 아니라 검토자로서 또는 최종승인권자로 서명을 한 것도 모두 자신의 업무 품질이다. 자신이 기록하거나 검토 또는 승인하고 나서 그때 당시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자기부정에 해당하므로, 검토자나 승인권자도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서명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