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음식의 획일화가 불러올 비극
[칼럼] 음식의 획일화가 불러올 비극
  • 신동화 명예교수
  • 승인 2024.01.09 0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식품화…보편성 불구 고유한 지역적 특징 기대 어려워
신동화 명예교수(전북대·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명예교수

사람의 지역 간 이동이 빈번하고 세계여행이 일상화되면서 음식 또한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먹은 음식을 몇 시간 비행기 여행하여 닿은 낯선 나라의 음식점이나 매장에서도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화된 대표적인 음식이 햄버거와 각종 닭튀김, 여러 유가공, 육가공 제품이다. 그뿐만 아니라 글로벌 음료인 코카콜라와 펩시는 일부 공산국가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 가게에서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역의 고유한 음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도 그렇게 다양하게 지역을 대표해 왔던 서민 술, 막걸리가 지역성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막걸리 제조 방법에서 가장 두드러진 누룩을 자가 제조하여 막걸리를 만드는 업소가 거의 사라졌고, 전국을 상대로 한 대형 업체가 넓고 효율적인 유통망을 통하여 전국을 누비고 있다.

또한 우리 전통 누룩을 대신하여 일본산 고지가 자리매김하면서 막걸리의 맛이 획일화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아직도 지역 고유 맛을 유지하는 극소수 업체가 있긴 하지만 대량 유통망을 가진 업체와는 경쟁하기 어렵고 일본 고지를 사용하는 막걸리와는 가격 경쟁력을 잃는다.

비빔밥은 전주라는 음식 특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표 발효식품인 장류나 김치 등도 지역적 특성이 많이 퇴색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발효 기술이 발전하면서 전통 방법에 따른 수가공 체제에서 기계화, 대량생산을 위한 제조 방법의 개량으로 제품의 차별화보다는 가격, 물량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제품별 특징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정 지역의 범위를 잃어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으며 교통편의에 의해서 지역성 상품이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하여 국제식품화하는 경향과도 무관치 않다.

사람의 왕래가 쉽지 않았을 때는 한 지역의 특수한 음식은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어 지역을 상징하는 음식으로써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근래 한 지역의 음식, 한 나라의 대표 음식의 특색은 그 지역뿐만 아니라 국내 어느 지역,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제품을 대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식품이 보편화되는 장점도 있으나 지역적 특성을 상실하고 고유의 맛이 획일화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식품에 있어서는 특성을 잃고 나면 모두 잃어버려 고유한 지역적 차별화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음식이야말로 사람의 일상생활과 가장 밀접한 인연을 맺고 있다. 그런데도 매일 접하는 식품이 이미 대중화되어 있다면 그 식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는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계속하여 지역성을 띤 고유한 식품을 원하지만 일단 국내, 아니 외국에 알려지면 그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대량생산 개념이 도입되고 앞선 과학기술이 투입되면서 경제성, 상품성이 독창성을 넘어서게 된다.

포도주만 하더라도 프랑스 보르도 산이 세계적인 명품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으나 스페인산, 미국산, 남미산 등이 나오면서 프랑스산 포도주는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있다. 품질과 가격에서 차별성을 잃어가고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 면에서도 첫 번째 자리를 내주고 있다.

대부분 한 나라에서만 생산되는 전통 식품류는 그 나라에서만 독특하게 생산된다고 여겨지나 일단 세계에 알려지게 되면 지역성, 차별성을 상실하고 세계에서의 경쟁만이 남는다고 느껴진다. 댄 살라디노의 역작 “사라져가는 음식들”에서는 세계에 잘 알려진 많은 지역 명품들이 스러져가는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근래 식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상황은 특화되었던 식품이 획일화되면서 특징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다. 주위에서 우리가 깊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슬그머니 일상 식생활에 침투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고 세계로 번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교역이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열대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을 시기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으며 오지에서 고유하게 생산되었던 식재료들도 급격히 세계 각 지역에 확산하는 것을 보고 있다.

이제 온 세계가 사서 먹는 식품이 나도 모르게 갈수록 똑같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식재료를 생산하는 씨앗이 세계 4대 곡물 메이저 기업의 손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약 6000종의 식물을 먹어 오던 것이 지금은 고작 9종에 그치고 있으며, 그것도 밀과 벼, 옥수수 등 3종이 전 세계인 칼로리의 60%를 점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치즈 생산의 절반이 한 곳에서 제조한 미생물과 효소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농작물이나 축산물에서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수백 년 심어 우리 식량원으로 했던 쌀 품종은 새로운 품종으로 대체되어 농민 대부분이 국가가 선정한 몇 품종으로 획일화되고 있으며 밀이나 옥수수도 비슷한 상황이다.

알려진 바로는 인간의 식단은 지난 150년 동안(대략 6세대) 변화가 그 이전 100만 년 동안(대략 4만 세대) 일어난 것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수렵 채집인이었던 우리 조상의 식단이 너무나 급격히 현재의 식탁으로 변하였고 누구도 이 변화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며 식품의 다양화보다는 획일화를 더욱 빠르게 촉진할 것이다. 한꺼번에 재앙을 맞을까 봐 두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