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운맛의 신비
[칼럼] 매운맛의 신비
  • 신동화 명예교수
  • 승인 2023.11.1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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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 열풍…K-푸드 정착위해선 산·학·관·연 유기적인 협조 필요
신동화 명예교수(전북대·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신동화 명예교수
△신동화 명예교수

음식의 맛 중에서 가장 자극적인 대상은 아마도 매운맛일 것이다. 맛이 아니라 통각(痛覺), 즉 아픈 감각이지만 이 매운맛 열풍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인이 매운맛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미국에서도 매운맛 소스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슈퍼에서도 ‘매운’이란 단어가 들어간 품목이 257개 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매운맛이 추가된 포도주가 선보여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매운맛을 5미(味)에 포함하고 있으나 국제적으로는 매운맛은 빠지고 달고(sweet), 시고(sour), 짜고(salty), 쓴(bitter)맛 등 4미가 통용된다. 근래에는 감칠맛(umami)이 추가되는 경향이다. 우리만 매운 고추가 들어간 식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4명 가운데 1명은 고추를 매일 먹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멕시코, 중동, 타이 등에서는 각종 요리에 반드시 들어간다. 고추 먹는 양으로 따지면 한국인이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할 것이다. 1970년대 말 우리나라에 고추흉작이 들었을 때 세계 고추 교역량의 1/4을 수입해 소비했으니 그 요구도를 알 수 있겠다.

고추의 원산지는 남미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볼리비아에서는 6000년 전부터 재배되었다. 잉카인들은 매운 열매를 ‘아히’라 불렀고, 멕시코의 아스텍인들은 ‘칠리’라고 바꿔 불러 지금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유럽에 칠리가 전파된 것은 콜럼버스가 원정에서 가져와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전파되었으나 오랜 재배 역사로 대부분 자기 나라의 토종으로 여기게 되었다.

고추는 다품종과 꽃가루받이가 용이해 수천에 이르는 서로 다른 품종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색깔만 하더라도 붉은 것부터 노란색, 갈색, 흰색 등 다양하다. 또한 크기와 모양도 별난 것들이 눈에 띈다.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는 1년 초로 알려져 있으나 상하의 나라에서는 다년생으로 1년 내내 고추 수확이 가능하다. 전 세계 생산량으로 봐서는 인도가 가장 앞서있고 품종도 다양하다.

고추는 전 세계 민속 신앙에도 등장한다. 동유럽에서는 고추가 흡혈귀와 늑대인간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고 전쟁에서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민속 신앙인 쌈줄에 고추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상징적으로 아들을 낳았다는 증표를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고추를 먹는 많은 나라 사람들은 고추는 매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맵다고 알려진 청양고추를 선호하는 이유는 그 매운맛과 깨끗한 뒷맛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 고추와 청양고추의 매운맛을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매운맛을 스코빌 지수로 비교하는데, 물에 매운맛 성분을 희석 배수를 높여가며 매운맛을 느끼지 못하는 한계 수치를 기준으로 비교한다. 세계에서 가장 맵다고 알려진 부트졸로키아(일명 귀신고추)는 100만을 초과하는 스코빌 지수를 나타내고, 멕시코의 아바에로는 30만을 넘는다. 청양고추는 겨우 1만2천 정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매운 고추에 비하면 저 아래쪽에 위치한다. 귀신고추는 작은 조각을 혀에 붙이면 펄쩍 뛰지 않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런 매운맛의 근원은 캡사이시노이드(capsaicinoid)로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다시 맵기의 정도가 가장 높은 캡사이신(capsaicin), 디하이드로캡사이신(dihydrocapsaicin) 등과 함께 매운 정도가 조금 낮은 노르디하이드로캡사이신(nordihydrocapsaicin)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매운맛 정도가 높은 성분이 많이 함유될수록 매운맛의 강도는 높아진다.

음식에 매운맛을 주는 성분은 고추 외에도 다양하다. 후추, 산초, 마늘, 생강, 파, 겨자, 고추냉이, 무, 양파 등이 있으며 이들 원료에 들어 있는 매운맛 성분의 화학 구조는 각기 다르다. 상기 예시한 여러 매운맛의 향신 조미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선호하는 것들이다. 아마도 마늘이나 양파에서 매운맛을 빼버리면 선호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는 위에 열거한 매운맛 채소류들이 인기 품목이 되었을 것이다.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시노이드류의 매운맛 외에도 생리 기능성이 많이 알려지고 있다. 특히 발한 및 해열 작용이 바로 나타나고, 소화불량과 수종, 구풍 등에도 효과가 있다. 이 외에도 강력한 항산화 작용으로 인한 항암 효과가 밝혀지고 있다. 또한 면역기능향상과 함께 최근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체지방 감소로 체중조절이 가능하며 입맛도 돋운다.

캡사이시노이드 물질이 인체에서 열 발산에 영향을 주는 주된 이유는 체지방 대사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비만은 세계인의 관심사인데 이들 매운맛 성분이 체지방 감소에 관여한다는 학술적 뒷받침은 맛과 함께 매운맛을 선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매운맛으로 일약 유명해진 우리 식품, 특히 라면과 김치 등에서 이런 특성을 더 잘 알려 소비자의 관심을 계속 유지해야겠다.

전 세계 매운 소스 시장은 2020년 27억5천만 달러에서 2026년 46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가 뒷받침된 우리 K-푸드가 일시적 유행이 아닌 외국인의 식생활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산·학·관·연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한 시점이며 아울러 매운 성분의 섭취량에 따른 생리적 안전성에 대해서도 학술적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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