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뉴스로 바라 본 코로나 시대 ‘가짜뉴스 인포데믹’ 주의보-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41)
밀가루 뉴스로 바라 본 코로나 시대 ‘가짜뉴스 인포데믹’ 주의보-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41)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1.01.25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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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인한 ‘글루텐 실조’ 등 음식 괴담 검증을

“밀가루 음식 먹었더니 뇌손상, 그 이유는…?” 급감하는 쌀 소비와 맞물려 제2의 주식으로 떠오른 밀가루 음식을 먹었더니 뇌가 손상됐다는 어느 기사의 제목이다. ‘글루텐 실조’라는 생소한 병을 소개한 내용이다. ‘영양실조’를 패러디한 말인 것 같다. 이 기사가 포털사이트 주요 기사에 오르면서 “병원에서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 했다.”, “밀가루 좋아하는데 어쩌나?” 등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지구촌 사람의 절반은 쌀을 주로 먹고 나머지 절반은 밀가루를 주식(主食)으로 한다. 주로 서양 사람들이 밀가루를 먹는데, 이런 기사들을 보면, 밀가루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뇌에 문제가 생기는 사례가 속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치료제와 백신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보니 음식에 많이 의존하게 되고 건강정보를 얻으려는 대중의 욕구도 함께 늘고 있다. 그런데 잘못된 정보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이 기사로 나와 ‘음식 괴담’이 판치고 있다면 어떨까?

정말로 밀가루가 뇌손상을 일으킬까? 글루텐 실조(失調)현상은 “면역체계가 글루텐에 부정적 반응을 보여 뇌의 일부를 손상시켜 현기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뇌졸중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밀가루는 쌀과 달리 쫄깃한 식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글루텐 성분 때문이다. 글루텐은 밀가루에 들어 있는 단백질로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탄성이 좋은 글루테닌과 점착성이 강한 글리아딘은 물과 섞이면 쫄깃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빵, 파스타 등 밀가루 음식을 만드는 데 감초 역할을 하는 글루텐이 몸에 염증과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오해를 받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동안 글루텐 관련 질환으로 많이 알려진 셀리악병은 ‘밀가루의 글루텐이 일부 특이 체질 사람에게 설사, 영양장애, 장 염증 등의 질환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하지만 밀가루의 글루텐으로 발생되는 질환들은 매우 희귀한 것이며, 특히 한국인 유전자로 보면 글루텐 섭취로 인한 질병이나 문제 발생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알려져 있다.

셀리악병은 글루텐 소화효소가 없어서 생기는 유전질환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글루텐은 단지 식물성 단백질일 뿐이므로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고 셀리악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기사처럼 뇌손상을 일으킨다는 주장이나 실험 결과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식품과학자들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그 사례를 들어본 적도 없다.

위 기사는 영국 ‘더선’의 보도를 외신으로 번역한 것이다. 단지 한 명의 글루텐 실조 사례를 들어 일반적으로 뇌손상이 온다는 엉터리 뉴스를 내보낸 것이다. 원문 기사에도 현지인들이 “이게 언론이냐(This is journalism?)”라고 댓글을 달 정도라 한다.

이런 보도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이런 충격적인 엉터리 건강 관련 기사가 나오면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건 물론이고 허위 정보의 확산, 즉 인포데믹(정보 전염병) 현상이 나타나 일파만파로 퍼진다.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시민들에게 음식이 주는 위안이 큰 상황에 괜한 걱정을 끼치게 된다는 말이다.

외신을 번역해 그대로 싣는 경우엔 오보를 인지하기도 어렵고 기사를 수정하거나 내리기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문제 있는 오보로 확인되더라도 쉽게 바로잡지 않는 일부 언론의 태도도 가짜뉴스의 생산과 확산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 소비자들도 영리해져야 한다. 이상한 기사가 나오면 반드시 누가 이야기하는 건지, 그 출처가 어디인지, 무엇을 근거로 얘기하는지를 검증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

음식은 죄가 없다. 모든 음식은 사람에게 좋게 쓰이도록 태어났다. 건강을 잃은 원인을 밀가루, 빵 등 음식에만 돌리지 말고 편식, 과식, 폭식, 야식 등 나쁜 식습관에 있는 게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균형되고 절제된 바른 식생활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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