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치 종주국 논란
[기고] 김치 종주국 논란
  • 이철호 명예교수
  • 승인 2021.04.1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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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명예교수(고려대학교·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음식문화 고증 국가별 자존심 걸고 연구
한림콜로키엄 개최 문제의 심각성 반영
문헌엔 저(菹)로 표기…음식명 우리글로 써야
△이철호 명예교수
△이철호 명예교수

지난 19일 한국 과학기술한림원이 ‘김치 종주국 진실 논란’을 주제로 한림 콜로키엄을 개최했다. 우리나라 최고 과학기술 분야 석학들의 모임인 과학기술한림원이 김치의 종주국 논란을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자부하는 국가들은 의례 그들이 먹는 음식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음식문화 원류에 대한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시작된 고고학 연구는 유럽인들의 주식인 밀과 보리의 재배와 염소, 양, 소의 가축화가 유럽과 인접한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1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인류의 농업 발상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러시아의 식물육종학자 니콜라이 파빌로프(N.I. Vavilov, 1887-1943)는 쌀의 기원지를 인도라고 주장하였으나, 고고학 연구를 유럽보다 1세기 늦게 시작한 중국에서 여러 고고학 자료와 문헌 근거를 제시하여 중국이 인도보다 앞서 쌀 재배를 시작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중국보다 고고학 연구를 반세기나 늦게 1960대에 시작한 한국에서 최근 기원전 12,500년 경으로 추산되는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어 쌀의 재배 기원이 다시 한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와 같이 식물의 재배 기원과 음식문화의 원류에 대한 학술적 고증은 각 나라마다 자존심을 걸고 연구하고 있으며 학술적으로 뒤처진 나라들이 손해 보기 마련이다. 비근한 예로 식물학 연구에서 식물의 라틴어 학명을 정할 때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뒤에 붙이게 되어있다.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열자 유럽의 식물학자들이 일본에 와서 서양에서 발견되지 않는 많은 식물을 발견하고 그들의 이름을 일본 토종 식물의 학명에 붙였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자 일본 학자들이 한국의 토종식물에 그들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 우리는 일본 사람들의 이름이 붙은 한국 토종식물의 학명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하면서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잃어버리고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지난 천 년간 사대주의에 매몰되었으며, 동양이 본격적으로 서양에 소개되었던 20세기 초반에 일본의 속국이 되어 우리의 것을 대부분 잃어버린 상황이다.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시급히 되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동안 우리 음식의 원류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진 것이 없다. 최근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에 힘입어 한반도 동남해 안과 일본 규슈 북서해안, 즉 대한 해협연안에 산재해 있는 패총(조개무덤)에서 원시 토기문화시대(기원전 8000-5000년)의 근거가 밝혀지고 있다. 토기의 발명은 물을 담아 끓이고 젓은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끓임 문화(찌개 문화)와 발효문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대한 해협연안에 살던 해변의 채집인들이 바닷물(3% 식염)이 담긴 토기에 채소를 담가 두면 젖산과 초산을 생산하는 유산균 류코노스톡 메이센테로이더스가 가장 먼저 번식하여 김치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치는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 먹던 엔시 레지(채소나 풀을 쌓아두어 강한 유기산 발효를 일으킨 것) 형태의 적물 저(菹)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치는 소금물에 절인 채소를 가볍게 유산균 발효시킨 것으로 pH 4.0 정도에서 최적의 맛을 내나 중국의 저는 강한 신맛을 내는 초절임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의하면 ‘주나라의 문왕이 저(菹)를 즐겨 먹었다는 말을 들은 공자는 문왕을 존경한 나머지 모든 행위를 그에 따르기 위하여 콧등을 찌푸려가며 저를 먹어 삼 년 후에 이 맛을 즐기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김치와 중국의 저가 이렇게 다른데도 한문으로 된 우리나라 문헌에서 우리의 김치를 저로 표기한 사례가 허다하다. 이와 같이 잘못된 역사로 인해 우리의 것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중국의 억지 주장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음식의 역사와 문화를 우리글로 우리의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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