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만난 가공식품(加工食品) 전성시대-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81)
때를 만난 가공식품(加工食品) 전성시대-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281)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2.03.21 07: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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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간편·저장성 등 부각…신유형 등장
일부 부정적 괴담…표시 기반한 선택이 합리적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식품산업은 가공식품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그 간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장기보존식품, 레토르트식품, 통조림 등 멸균식품, 냉동식품, 건조식품 등 가공식품이 비축식량으로 활용되면서 그 선호도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합금지,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서 먹는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급팽창했기 때문이다. 즉석조리식품, 신선편의식품에 이어 ‘간편조리세트’라는 유형도 신설될 정도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가공식품은 세계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기록적인 발전을 이뤘다. 전쟁 중에 장기저장이 가능하고 조리 없이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군(軍)급식을 대량으로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쟁식량은 일반적으로 휴대와 섭취가 간편하고 저장성과 영양가도 높아야 하며 먹은 뒤 쉽게 버릴 수 있도록 포장돼 인스턴트식품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술, 떡, 엿 등 매우 단순한 수공업의 시대였다. 근대적인 공업화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전후인데, 우리나라는 일본 식품원료의 공급처이자 상품의 소비국으로 이용당하면서 부터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원조로 곡물도정, 수산물통조림, 제분, 제당, 양조 등 전쟁 군수품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산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1930년대에는 모리나가(森永), 메이지(明治) 등 일본의 제과업체가 서울에 공장을 세우고 우리 식품공업을 주도했으나 캐러멜, 사탕 정도였다. 1933년 조선맥주와 소화기린맥주가 설립되면서 국내에 맥주가 도입됐고 1935년부터는 일본의 유업회사가 국내에 대규모 목장을 설립해 우유 공급이 시작됐다.

해방 이후 1948년 12월 체결된 ‘한미경제원조협정’이 우리나라 식품공업의 태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옥수수와 밀 식량원조가 제분공장을 활성화시켰고, 장류, 제과, 제빵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추진과 월남파병, 중동건설 등으로 우리 식품산업의 약진이 있었다. 특히 쌀 부족에 따른 정부의 밀가루 분식장려시책으로 제과, 제빵, 제면산업이 급성장했고 장류공업도 발전했다. 1970년대는 자립경제와 고도성장을 실현한 우리 경제의 대 도약기였다. 1970년대 후반 개방농정으로 해외 원료농산물의 수입이 보다 용이해졌고 고급화, 다양화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치즈, 마가린, 소시지, 햄, 통조림 등 육가공품이 본격적으로 생산됐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은 관광산업과 함께 식생활 변화, 국내 식품산업의 수준 향상에 기여했다. 특히, 뜨거운 물에 데워 즉석에서 먹는 레토르트식품의 출시가 주목을 받았다. 2000년 접어들어 가공식품의 급성장과 대형마트 중심의 유통체계가 구축됐고, 2002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건강식품시장이 펼쳐지게 됐다.

미래 식품산업은 편의성, 안전성, 기능성으로 갈 것이며, 외식과 간편식, 기능성식품, 다양한 포장재의 수요가 지속될 것이다. 특히 아웃도어 식품의 개발과 노약자, 환자, 운동선수 등을 위한 특수용도식품의 개발이 활기를 띨 것이다. 향후 대체식품, 슈퍼푸드, 유기농, 알레르기, 유전자재조합농산물(GMO), 나노식품, 외식산업, 정보통신기술(ICT)융합 스마트패키징 등의 키워드가 지속화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먹을거리가 풍부하고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먹는 음식이 가장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다. 식량이 넘쳐나다 보니 복에 겨워 ‘가공식품’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인류가 가공식품 덕분에 지금까지 겨우 살아남았으면서도 말이다. 소수이긴 하나 극성인 사람들 때문에 가공식품 관련 괴담이 넘쳐난다. '가공식품 많이 먹으면 암 걸린다' '가공식품에 넣는 첨가물은 나쁘다' '천연식품을 먹어야 건강해진다' 등이다. 학계에는 가공식품 관련 부정적인 논문들도 쏟아지고 있다. 같은 음식인데도 발암성이 있다는 논문도 있고, 없다는 논문에 심지어는 항암효과가 있다는 논문까지도 있다. 적색육, 술, 커피, 김치, 젓갈 등이 바로 이런 식품들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음식이라는 숲을 보지 않고 하나하나의 개별 성분인 나무만 봤기 때문이다.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이 먹는 모든 음식은 미량이나마 좋은 성분이든 나쁜 성분이든 다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음식에 든 개별 성분만을 따져본다면 모든 음식이 항암식품으로 둔갑될 수도 있고, 발암식품으로 폄하될 수도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이익과 관심에 따라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같은 음식을 놓고도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이다.

가공식품은 어차피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천연식품만으로는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섭취 양과 방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별 성분의 존재 여부만으로 좋다, 나쁘다 등 소비자의 판단을 왜곡시키는 일은 이젠 그만했음 한다. 이는 푸드패디즘과 혼란만 조장할 뿐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모든 음식은 좋은 면과 나쁜 양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앞으로는 성분과 건강 영향을 소비자가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표시에 기반 한 선택의 문제’로 풀어가는 합리적인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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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2022-03-23 08:43:39
좋은 내용으로 가독차있네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