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사태’에 업계 촉각…유업계 경영 악화 수면 위로 부상
‘푸르밀 사태’에 업계 촉각…유업계 경영 악화 수면 위로 부상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2.11.01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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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줄어 제품 수요 감소한 데다 수입 유제품에 경쟁력 밀려
영남우유 폐업하고 삼양식품은 ‘제주우유’ 매각
중소 유업체 대부분 적자에 대기업은 이익 추락
커피 등 다른 사업서 수익 내 적자 메우는 구조
R&D 지원에 사료 자급률 제고 등 자구책 시급

푸르밀이 실적 악화, 적자 누적으로 내달 말 사업종료를 발표하자 유업계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비슷한 사업 구조를 가진 중소 유업체에 대한 우려가 시장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국내 우유 시장은 출생아 급감으로 제품 수요가 감소하는데다 가격 면에서 수입 유제품에 크게 밀려 시장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원유 할당제, 사료 및 인건비 인상 등으로 수익성 악화까지 겹치며 실로 벼랑 끝에 몰리게 되면서 사업종료와 폐업이 더 이상 ‘남일’이 아니게 됐다. 특히 자체 경쟁력이 부족한 중소업체들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내달 말 사업을 종료하는 ‘푸르밀사태’에 국내 유가공업체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우유를 제외한 대부분 유가공업체의 경영난이 지속되는 상황에 업계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돌파구 모색에 한창이다.(사진=식품음료신문)
△내달 말 사업을 종료하는 ‘푸르밀사태’에 국내 유가공업체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서울우유를 제외한 대부분 유가공업체의 경영난이 지속되는 상황에 업계는 경쟁력 확보를 위한 돌파구 모색에 한창이다.(사진=식품음료신문)

실제로 서울우유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가공업체가 오랫동안 경영악화를 겪고 있다. 서울우유의 작년 매출액은 1조8434억 원으로 전년 대비 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82억 원으로 2% 감소했다. 매일유업은 작년 매출액 1조5519억 원, 영업이익 878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6.06%, 1.51% 증가했으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8.2% 줄어 1·2분기 연속 감소세다. 남양유업은 2020년 767억 원, 2021년 779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으며, 올해 2분기엔 영업손실 199억 원을 기록해 2019년 3분기부터 12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중소 유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산우유의 작년 매출은 1679억 원으로 전년 대비 3% 늘었지만 영업손실 규모는 11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커졌다. 건국우유도 작년 11억 원의 적자를 봤다. 비락은 작년 2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2017년의 93억 원과 비교하면 수익이 69% 줄었다. 연세우유도 두유를 제외한 흰 우유 사업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

영업 환경 악화 속에 이미 사업을 접은 곳도 있다. 2015년 영남우유가 높은 원유가와 소비 부진에 따른 재고 급증으로 폐업한 바 있고, 삼양식품은 지난 4월 우유 사업에 뛰어든 지 11년 만에 문막 공장에서 생산하던 ‘제주우유’를 지역 업체에 매각했다.

업계는 중소 유업체들의 적자 행진의 이유로 높은 비중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생산에서 찾고 있다. 특히 중소 유업체들은 대부분 자체 브랜드 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대형 유통업체의 PB 유제품을 저마진으로 생산하는 OEM 사업의 매출 비중이 상당한 편이다. 실제 푸르밀도 전체 매출 중 절반 이상이 OEM 사업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으며 중소업체들 중엔 그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 유업체들의 OEM 사업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낙농가로부터 매입해 남는 원유를 어떻게 해서든 폐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OEM은 원가 부담이 커 자체 브랜드 생산보다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거나 손해까지도 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에 의존하면 결국 실적 악화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한 예로 A기업이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알려진 대형마트의 PB로 판매하는 우유의 소비자가격은 1580원인데 이 기업이 낙농가에 원유를 구매하는 가격은 1150원이다. 이와 함께 제조원가와 유통업체에 지불하는 임가공비 등 비용, 유통마진까지 제하면 오히려 30%의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업체의 사업 다각화 역량이 떨어지는 상황에 우유, 유제품에만 특정돼 있는 포트폴리오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설명.

대형 유업체들은 OEM 사업과 동시에 건강기능식품과 케어푸드(환자식), 단백질(프로틴) 제품 출시 등 사업 다각화로 생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제약회사 및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 등 경쟁 상대가 많은 시장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긴 어렵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업체들이 PB 제품을 만들지 않을 경우 장기 보관이 가능한 분유로 만들어 판매해야 하는데 분유 판매는 OEM보다도 수익성이 더 떨어진다. 대형업체마저도 커피와 단백질 음료 등 다른 사업으로 흑자를 내 우유 사업에서 난 적자를 메꾸는 구조”라며 “시장개방과 인구 구조·소비 변화에 맞춰 지속가능한 시장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구조적인 개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외국산 유제품 비중은 점차 더 늘어날텐데 ‘제 2의 푸르밀’ 사태가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원유 가격에 대한 유업계의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원유 기본가격 조정협상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31일, 적어도 내달 안에는 올해 원유 가격을 협상을 마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이번 인상분은 52원±10%(47~58원)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원유가격 인상에서 최저치인 47원이 인상되더라도 전년의 23% 대비 2배가 훌쩍 넘는 인상폭을 보이게 된다. 이 경우 현재 리터당 2700원 중반 수준인 흰 우유의 가격이 향후 3000원대 허들을 넘어 최대 3200원까지도 인상될 수 있는 것이다. 치즈, 크림,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가격 인상도 지속 진행 중이다. 앞서 서울우유와 남양우유는 치즈 제품 출고가를 10~20% 올렸고, 매일유업도 휘핑크림 등 가격을 6~7% 인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유가공 업체는 국내 원유를 할당받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타국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다. 남는 원유로 치즈·단백질 등 신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애당초 원유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가공식품도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올해 원유가격이 큰 폭으로 오른다면 제조사들도 가격을 적정선으로 인상해야 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인상폭이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선다면 판매 부진에 빠질 우려가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유업체가 국산 원유를 이용해 경쟁력 있는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구개발 지원책 등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원유 생산비를 줄이기 위한 사료 자급 등 자구책 등도 정책적으로 발굴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시장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 유업체가 낙농가로부터 가져와야 하는 의무 매입 원유량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내년부터 원유 용도별차등가격제가 도입되면서 점차 음용유의 물량을 줄이고 가공유 물량을 늘려 유업체 도산을 막을 제도적 환경을 갖춰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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