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단재(丹齋)와 도산(島山)을 그리며
[기고] 단재(丹齋)와 도산(島山)을 그리며
  • 이철호 명예교수
  • 승인 2023.04.1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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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명예교수(고려대·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이철호 명예교수
△이철호 명예교수

한민족의 고유한 음식문화의 기원과 발전 역사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우리 문화의 기저에 흐르는 철학사상과 천재 학자들의 연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동북아시아의 끄트머리 한반도에 매달려 중국과 일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천여 년을 살아남아 ‘동방의 등불’로 빛을 발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꽃피우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애국자들의 헌신과 피를 토하는 절규가 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중에서도 단재 신채호(1889~1936) 선생과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의 부르짖음은 혼미한 오늘의 한국사회에 다시 되새겨야할 가르침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재는 1928년 일경에 체포되어 10년형을 받고 여순 감옥에 수감 중 조선일보에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했다. 그는 망국의 원인을 사상의 퇴락과 도의의 타락으로 보고 이것은 나라의 역사가 바로잡히지 않았음에 기인한다고 판단하여 민족사의 주체적 인식에 근거한 한국사를 저술하였다.

역사를 ‘아(我:나)와 비아(非我:타인)의 투쟁의 기록’으로 규정한 단재는 후에 일어난 왕조가 전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살라 없애 버리므로 올바른 역사 기술이 어려움을 지적하고, 특히 중국과 일본이 장기간 의도적으로 왜곡 폄하한 한민족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시급하나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가 1908년 발표한 논문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는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역사론을 발표한 효시로 알려져 있다. 식민사관으로 얼룩진 오늘의 한국사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반일(反日)과 극일(克日)의 소모적 투쟁들이 해결될 수 없음을 이미 백 년 전에 단재선생이 경고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은 발해를 그들의 역사에 편입했고 고구려의 축성을 만리장성의 시발점으로 세계에 알리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같이 중요한 한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국식품사연구’와 ‘한국근현대식품사’를 출판하면서 기존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학계의 경직성과 편파성에 크게 실망하였다.

도산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의 소위 하급이라 일컫는 평민들은 노동을 역작하여 살아왔거니와, 소위 중류 이상 상류 인사라는 자들은 그 생활의 유일한 일은 협잡(挾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네들은 거짓말 하는 것이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거짓과 속임과 협잡이야 말로 나라를 망치는 ‘민족의 원수’로 규정하고, 진실과 정직한 마음 갖기를 역설했다. 도산선생의 말씀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외치는 경고임에 틀림없다.

공산독재를 물리치고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피땀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을 2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못난 후손들이 거짓과 속임수에 휘말려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 가짜 독립투사의 유족들이 보훈처를 더럽히고, 정치 지도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시대착오적인 이념을 내세워 국민을 편 가르기하고, 정의를 구현할 마지막 보루인 법관들이 의식화된 것도 모자라 50억 클럽에 줄줄이 연루되어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법을 만드는 자들이 스스로 특권을 만들어 법치국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국민투표로 국회법을 개정하여 구시대의 유물인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없애고, 국회의원 세비를 대폭 삭감하고 각종 특혜를 철폐하여 북유럽 국가들의 국회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태에 있다. 구한말의 동북아 상황과 유사한 형태로 가고 있다. 단재와 도산이 있었더라면 무심한 국민을 향한 피를 토하는 절규가 들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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