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는 쌀, 사회안전망·통일의 밑거름 활용을
[기고] 남는 쌀, 사회안전망·통일의 밑거름 활용을
  • 이철호 명예교수
  • 승인 2023.04.25 0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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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생산, 국민 생존권·통일 대비 거시적 시각서 보아야
취약 계층엔 무상 지원도…통일 실현 땐 150만 톤 부족
비축미 매년 60만 톤 저가 방출 시 쌀 가공산업 활성화
이철호 명예교수(고려대·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명예이사장)
△이철호 명예교수
△이철호 명예교수

한민족에게 쌀은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죽기 전에 흰쌀밥에 고깃국을 양껏 먹어보는 것이 조선 사람들의 꿈이었다. 그러던 쌀이 시대가 변해 밀가루 음식에 밀리고 고기를 먹기 위한 부식으로 전락하였다.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만들던 한국인의 음식문화가 고기 위주의 밥상으로 변해 밥은 없어도 그만인 신세가 된 것이다. 반세기 전만 해도 전체 칼로리 섭취의 60%를 차지하던 쌀이 현재 1인 1일 평균 150g(밥 한 공기 반)을 소비하여 전체 칼로리 섭취의 겨우 25%에 기여하고 있다. 쌀이 주식의 위상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경제가 발전하여 풍요로워진 결과이긴 하지만 쌀값 하락과 한국 농업의 위기, 식량안보의 적신호로 나타나고 있다.

쌀의 가치 하락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추진해온 쌀 정책(사실상 식량정책)의 오류가 크게 작용하였다고 본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주장에 밀려 20년 동안 관세화 시장 개방을 유예받으면서 연간 40만 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정책 참사를 일으켰다. 일본은 WTO 출범 5년 만에 쌀시장을 개방하여 유리한 조건으로 그들의 쌀 산업을 지켜냈다. 일본은 무역자유화(UR)협상 동안 그들의 쌀이 일본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 최상의 품질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교육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연구 노력했다. 모든 식당에서 최상의 밥이 제공되도록 최고의 품질로 갓 지은 쌀밥을 정갈한 식기에 정성스레 담아내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우리나라는 쌀 소비가 급감하고 MMA 의무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쌀 생산을 줄이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생산을 줄이는 정책이 정당해 보이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쌀의 문제를 농림축산식품부의 문제로 보는 좁은 시각 때문이다. 쌀은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물질이며 통일을 준비하는 필수적인 사안이다.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은 10여 년 전부터 저소득 취약계층에 일용할 쌀을 무상 지원할 것과 통일미 120만 톤을 항시 비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식량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굶주림에 직면하게 되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전체 국민의 약 6%)에게 월 10kg의 쌀 또는 쌀가공식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입법화해야 한다. 이 제도로 연간 30만 톤의 쌀 추가수요가 예상되며, 연간 8천억 원의 추가예산이 필요한데 이것은 우리나라 연간 복지예산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이 제도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차적인 복지사업이다. 또한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북한 주민에게 즉각적으로 식량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시행하고 있어야 할 제도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예상치 못한 한반도 통일이 발생하면 약 150만 톤의 쌀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를 대비하여 매년 60만 톤의 쌀을 2년간 비축했다가 쌀가공식품 산업으로 방출하는 통일미 120만 톤 항시 비축제도를 입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연간 예산은 5천억 원으로 추산되며, 이는 남북협력기금의 29%에 해당한다. 북한 주민을 위해 한국인들이 통일미를 항시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으로 남과 북의 통일을 기정사실화 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2년간 저장된 비축미 60만 톤을 매년 쌀가공식품 산업에 MMA 수입쌀과 같은 가격(국산 쌀값의 절반 이하)에 공급하는 법이 만들어 지면 쌀가공식품 산업은 크게 활성화되어 쌀의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쌀 문제를 소비 확대와 새로운 수요 창출을 통한 범국가적 과제로 해결해야 한다. 연간 90만 톤의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면 논란이 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은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잘못 가고 있는 쌀 생산억제 정책을 증산정책으로 되돌릴 수 있으며 위험 수준을 넘고 있는 농지전용도 막아 우리 농업을 되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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