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 용량 표기 의무화에 대한 생각-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73)
슈링크플레이션, 용량 표기 의무화에 대한 생각-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73)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4.02.19 0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가 상승 속 가격 동결 압박에 나온 꼼수
시장이 해결할 문제…자율적 인상 억제 필요

정부가 용량 축소 등 가격을 편법으로 인상하는 ‘슈링크플레이션’ 에 대해 사회적 문제로 판단하고 칼을 빼 들었다. 올 초부터 이어진 정부의 시장 물가 안정을 위한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반해 일부 식품업계가 했던 용량 줄이기 사례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작년 11월 17일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2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소비자 알권리 재고를 위해 실태조사와 함께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고 12월 13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용량 축소 등에 대한 정보제공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하며 ‘경고’가 아닌 ‘의무’로 대처 강도를 높였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내년 1월까지 포장지에 변경 전후 용량을 표기하는 고시안을 마련키로 했고, 공정위는 용량 변경을 고지하지 않았을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제제 근거를 마련했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슈링크플레이션’은 규모나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용량을 줄여 실질적 가격 인상을 하는 행태를 뜻한다.

이번 정부의 고강도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은 이른바 꼼수 가격 인상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슈링크플레이션 식품 조사 결과, 최근 1년간 견과류, 소시지, 핫도그, 만두, 치즈, 우유, 맥주 등 총 9개 품목에서 용량이 줄어든 것이 시발점이 됐다. 식품 가공업체들이 판매 단위 제품의 양을 줄이기도 하지만 식당에서도 1인분 서빙 양을 줄이거나 반찬 수를 줄이는 사례가 많이 있다.

사실 이번 정부 조치의 핵심은 용량 변경 고지 의무다. 즉, 제조자 자율 협약을 통해 생산제품의 용량 변경 시 해당 사실을 기업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고지하고, 소비자원에 통지토록 했다. 소비자원도 모니터링 대상을 현재 주요 생필품 128개 품목(336개 상품)에서 158개 품목(500여 상품)으로 확대하는 한편 원 내 가격조사전담팀을 신설해 모니터링을 강화한다고 선언했다. 식약처는 내년 1월까지 포장지에 변경 전후 용량을 표기하는 고시안을 마련키로 했으며, 공정위는 용량 변경을 고지하지 않았을 경우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식당은 놔두고 가공식품 제조사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형평에 맞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가격 상승을 체감하는 것은 가공식품보단 식당이기 때문이다. 많은 식당에서 1인분 서빙 양을 줄이거나 반찬 수를 줄이는 사례가 있고, 심지어는 같은 가격에 삼겹살 1인분 양을 200g에서 100g까지 줄인 식당도 있었다.

업계에서는 이런 슈링크플레이션 현상의 시작을 정부의 거센 가격 동결 압박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식품기업들은 올 초부터 정부의 전 방위적인 가격 압력을 받았고 심지어 라면 등 일부 식품은 가격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최근엔 소주 가격까지 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폭등한 밀가루, 쌀, 옥수수 같은 곡물부터 설탕, 소금, 첨가물 등 원재료까지, 그리고 기름값, 전기요금, 가스요금, 인건비 등 운영비도 오르는 상황에 가격 인상 없이 버티기 위해서는 꼼수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대부분 식품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실정에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1달러당 1,300원 이상의 고환율도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결국 슈링크플레이션은 공급자의 건전한 의식과 소비자의 수용 등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를 정부의 규제로 통제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이 참 아쉽고 부끄럽다. 한국소비자원과 민간 소비자단체에서 물가를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기업 스스로가 꼼수 가격 인상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식품업체가 용량이나 원액 함량을 줄이는 것은 비용을 줄여 이익을 보려는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식품 안전 당국에서 시장을 압박하는 1회 제공량 당 당(糖) 함량이나 소금 함량, 칼로리 등 영양소 저감화 정책을 펴고 있어 1회 제공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용량을 줄면서 고지를 하라고 하니 가공식품 제조사 입장에서는 난감할 것 같다. 결국, 용량을 줄이지 않고 가격을 높이는 것보단 가격은 그대로면서 용량이 줄어드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잉 영양의 시대에 먹는 칼로리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