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크플레이션과 식품산업-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63)
슈링크플레이션과 식품산업-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363)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3.11.27 0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격 동결 압박에 중량 줄이고 품질 낮추기
정당한 행위 여부 논란…시장이 해결할 문제

정부가 용량 축소 등 가격을 편법으로 인상하는 ‘슈링크플레이션’ 에 대해 칼을 빼 들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1월 17일 제33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2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소비자 알권리 재고를 위해 실태조사와 함께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올 초부터 이어진 정부의 시장 물가 안정을 위한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반해 일부 식품업계가 했던 용량 줄이기 사례 때문이다. 최근 식품업체들이 사용한 방법은 가격은 놔두고 용량을 줄이는 소위 '슈링크플레이션 (shrink+inflation)’인데, 이른바 ‘꼼수’ 가격 인상이라 볼 수 있다. 식품 가공업체들은 판매 단위 제품의 양을 줄이기도 하고 식당에서는 1인분 서빙 양을 줄이거나 반찬 수를 줄이는 사례가 많이 있다. 심지어는 같은 가격에 삼겹살 1인분 양을 200g에서 100g까지 줄인 식당도 있다고 한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슈링크플레이션’은 규모나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용량을 줄여 실질적 가격 인상을 하는 행태를 뜻한다. 최근 식품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를 보면 핫도그 제품 중량을 500g에서 400g으로 줄이거나 한 봉지에 5개가 들어있던 제품을 4개로 줄이기도 한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용량이 줄면서, 가격이 오른 셈이다. 김, 단백질 바, 맥주, 스낵 등 가공식품의 양을 줄이며 많은 식품회사가 슈링크플레이션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가격과 용량 모두 동일하지만, 제품의 품질을 낮춰 이윤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과일음료의 과즙 원액 농도를 줄이고 소주 원액을 줄여 만든 저도주 등의 현상은 '스킴플레이션'(skimp, 인색하다+inflation)이라고 한다. 사실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스킴플레이션이 일어나도 소비자는 당장엔 가격 인상을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중량이 줄어 더 자주 사야 하기 때문에 양을 맞추려면 결국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게 돼 있어 식료품비 지출 증가로 인해 결국 장바구니 물가 상승을 체감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의 시작은 정부의 거센 가격 동결 압박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식품기업들은 올 초부터 정부의 전방위적인 가격 압력을 받았고 심지어 라면 등 일부 식품은 가격을 내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장기화로 폭등한 밀가루, 쌀, 옥수수 같은 곡물부터 설탕, 소금, 첨가물 등 원재료까지, 그리고 기름값, 전기요금, 가스요금, 인건비 등 운영비도 오르는 상황에 가격 인상 없이 버티기 위해서는 꼼수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대부분 식품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실정에 국제적인 인플레이션과 1달러당 1,300원 전후의 고환율도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소비자가 알지 못하게 제품 용량을 줄이는 것이 정당한 행위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제1호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상품의 가격을 정당한 이유 없이 결정·유지·변경(가격남용 행위)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이를 근거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기도 한다. 가격남용 행위로 인정될 경우, 관련 매출액의 6%를 과징금으로 내야하고 시정명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슈링크플레이션과 스킴플레이션은 위법이 아니라 게 중론이다. 위법성을 판단할 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가격을 인상한 경우”여야 하는데, 금 번 경우처럼 불경기에 원재료, 공공요금, 인건비 등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제조 단가가 오른 경우라면 기업 입장에서 가격을 올리거나 용량을 줄일 ‘정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정거래법」 제5조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관한 규정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면 정당한 이유와 무관하게 가격을 올리거나 소비자가 모르게 용량을 줄여도 위법은 아닌 것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란 “연간 매출액 또는 구매액이 40억 원 이상인 사업자로서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를 지칭한다.

결국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스킴플레이션은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 봐야 한다. 즉, 정부가 규제로 통제하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한국소비자원과 민간 소비자단체에서 물가를 정기적으로 감시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기업 스스로가 꼼수 가격 인상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식품업체가 용량이나 원액 함량을 줄이는 것은 비용을 줄여 이익을 보려는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식품 안전 당국에서 시장을 압박하는 1회 제공량 당 당(糖) 함량이나 소금 함량, 칼로리 등 영양소 저감화 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