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장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고찰-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76)
두부, 장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고찰-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176)
  • 하상도 교수
  • 승인 2019.09.23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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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아닌 ‘동반 下落’ 초래…물 만난 ‘K-푸드’에 족쇄

‘두부’와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장류’ 사업을 하고 있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앞으로 관련 사업을 확장할 수 없게 된다. 동반성장위원회는 9월 5일 회의를 열어 이들 업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 추천했고 향후 지정될 경우 ⌜생계형적합업종법⌟에 따라 중견기업과 대기업은 앞으로 해당 업종에 신규 진입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 또한 동반위는 떡류제조업(전통떡), 어묵 등은 산업에 미치는 영향평가와 산업계 추가 의견수렴 등이 필요해 3개월 더 논의한다고 한다.

△하상도 교수
△하상도 교수

‘중기적합 업종’,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사업군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허울뿐인 용어다. 누구나 생계형으로 창업할 수 있는 햄버거, 김밥, 떡볶이, 초컬릿, 사탕, 과자로도 전 세계를 주름 잡을 수 있고 맥도날드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될 수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전 동반성장위원회를 통한 ‘중기적합업종’ 지정(상생법)에도 반대했었다. 지난 7년을 돌이켜 보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한 게 아니라 ‘동반 하락’ 했다고 보면 된다. 중소기업에 혜택은 줬으나 그들만의 리그에도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소위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매출 500-1,000억 사이의 공룡 중소기업만 혜택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이참에 ‘생계형 적합업종’이라는 용어도 ‘생계형 보호업종’으로 바꿔 그 뜻을 명확히 했으면 한다. 이 법이 대기업과 경쟁하지 않도록 중소기업, 영세기업을 보호하자는 의미라 그렇다. 그리고 이번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대기업-중기 적합업종’의 연장이 아니고 중기보다도 더 열악한 ‘생계형 소상공인’을 위한 제도이므로 ‘대기업-중기-생계형’ 셋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제도는 국가 전체의 경쟁력과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 영세한 소상공인들, 즉 약자를 보호해 주기 위한 일종의 복지제도라 명분도 있고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규제를 통해 대기업의 진출을 막고, 소상공인들이 살아 갈 수 있는 인위적 환경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의 사정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대중을 의식한 정치인들이 주도해 추진하다 보니 국가 전체의 식품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제도는 당연히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서 벗어난 인위적인 특별조치라 앞으로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고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해 우리 후손이 더 큰 댓가를 치를 것임에 틀림없다.

이 제도로 과연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게 될까? 국내 대기업들은 당연히 손해고 소비자도 손해다. 제품의 선택권이 제한돼 상대적으로 품질이 낮은 영세업체 제품만을 선택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식품의 안전성 확보가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선정된 식품은 대부분 위생적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식품군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소기업, 특히 생계형으로 사업을 하는 업체들의 위생시스템은 매우 열악해 불량식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영세업체의 경우 식품사고가 발생하거나 불량식품을 만들다 적발돼 가혹한 행정제재, 리콜, 형사고발 등에 직면하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위생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생계형 소상공인들은 언제 어디서 사고가 터질지 몰라 하루하루 노심초사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세업체의 독점을 보장해 줄 경우 생산성이 떨어져 대량생산하던 대기업에 비해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인력을 감축하거나 저가의 저질 수입산 원료 콩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 농수축산물 생산 농가도 대량 구매의 기회를 잃어버려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대기업의 시장 확대 제한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식품 원재료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치가 지정돼 배추가 남아돌고, 두부와 장류가 지정돼 국산 콩 판로가 줄고, 떡, 막걸리, 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이 지정되면 쌀이 남아돌고, 양파, 마늘 우리 농식품의 판로가 줄어들 수 있다.

두부, 장류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특별법)에 절대 반대한다. 이 제도로는 우리나라 식품업계에서 초대형 글로벌 기업이 나올 리가 만무하고 모처럼 때를 만난 글로벌 K-Food 식품산업의 기회를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식품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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